영화 이야기

반항하는 게 아나라 희망이 없는 거야, 뱀에게 피어싱

guno 2010. 2. 23. 14:20

 

뱀에게 피어싱 Snakes And Earrings (2008년, 일본) ; 가네하라 히토미 원작, 니나가와 유키오 감독, 요시타카 유리코 주연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온라인 책소개에 있는 내용을 옮기자면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어둠의 일부가 되길 꿈꾸는 나약한 이들의 이야기. 제130회 아쿠타가와상 공동 수상작. 피어싱을 통해 혓바닥을 뱀처럼 둘로 가르는 그들의 신체개조는, 겉모습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이 세상에 대한 접근금지 경고다. 가학적 섹스, 건달에 대한 폭력과 비참한 죽음 등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증폭되는 불안과 긴장은 미스터리 소설과도 같은 충격적 반전과 함께 작품 전체의 슬픔을 추상화하고 있다."

 

소녀는 말한다. 따뜻한건 싫어. 평범한건 구려, 잘 살고 싶지않아, 폭력은 멋져, 섹스는 쿨해!! 길을 가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을 만나면 쳇, 하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소녀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밤에는 클럽에서 시간을 보낸다. 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 그가 혓바닥 피어싱을 보여주는데, 뱀처럼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이 징그러우면서도 멋지다고 생각된다. 몸 여기저기에 화려한 문신까지.. 꽤 괜찮은 애가 아닐까? 소년이 안내한 타투클럽. 문신전문가라는 소년의 선배는 소녀에게 은근한 눈길을 보내며 공짜로 문신을 해주겠다 유혹한다. 왠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의 선배에게 마음이 끌린 소녀는 문신을 하러 가고, 선배는 소녀에게 자신은 매저키스트인데 자기와의 섹스를 경험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소녀는 유혹에 넘어가 엄청난 고통을 경험한다. 그리고 문신이 완성되는 동안 계속된 고통은 어느새 소녀를 길들인다. 

소녀에게 첫눈에 반한 소년은 그녀 주위를 순박하게 맴돌며 보살펴주지만 소녀는 이미 선배에게 유혹된 상태. 질퍽하게 매달리는 남자는 별로라며 자꾸만 소년을 밀어낸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이 자취를 감춘다. 전화도 안되고 일하는 곳에도 나오지 않고 거리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찾고 싶은데 생각해보니 이름이 뭔지도 물어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별명을 불렀고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걱정은 되는데 신고 조차 할수 없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가운데 선배가 그녀를 돕겠다고 나선다. 자신이 알고 있는 소년의 정보를 모으고 소년이 일했던 곳에서 이것저것을 물어본 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경찰의 수색이 시작된 가운데 왠지 소녀는 이제 선배와 만나는 것도 재미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선배는 소년이 없는 소녀가 불쌍했는지 이상하게 친절하고 그럴수록 소녀는 소년이 그립다. 왜 걔는 그렇게 나를 좋아했을까.

어느날 무참하게 살해된 소년의 시체가 발견된다. 오래된 시체에선 알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진동하고 담뱃불로 지진 상처가 소년의 화려한 문신을 짓이겨놓았다. 이후 아무것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소녀, 그제야 자신이 고통을 즐긴 것이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는 행복에 화를 내고 있었다는 걸 안다. 그리고 화를 내는 사이 소년과의 행복을 내팽개쳤다는 것도 알게 된다. 왜 걔의 마음을 난 받아주지 못한 걸까. 방황하는 소녀에게 선배가 다가온다. 그의 포옹이 왠지 따뜻하다. 이 사람하고 시작할까. 걔하고 하지 못했던걸 선배와 한번 해볼까. 소녀가 마음을 열고 선배와 동거를 시작한다. 어느날 집안을 청소하던 소녀가 선배의 서랍장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향초를 발견한다. 섬찟한 냄새. 자신도 모르게 서둘러 서랍을 닫는다. 책상 위의 재털이. 선배가 담배를 피우다 비벼끈 꽁초에서 눈길이 멈춘다. 잔인하게 비틀어진 꽁초들. 자신도 모르게 얼른 재털이를 비운다. 소녀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포스터를 찾다가 일본어 포스터를 보고 뒤집어졌다. 무슨 생각으로 이랬을까? 알 수가 없지만 재밌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