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실망감을 안겨준 임상수의 하녀
칸에서 어떤 반응을 얻었건 내가 이 영화를 본 건 전도연과 이정재, 윤여정이라는 맛깔나는 배우들의 조합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년>밖에 보지 않은 터라 기대치랄게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 영화...후지다. 영화를 보고나서 어찌나 짜증이 밀려오던지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어떤 점에서 화가 치밀었는지 말하자면 일단 콘티도 대본도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은데 연출이 아주 잘못됐다는 거다. 이 영화는 극의 긴장감을 위해 현실에서 살짝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감독도 배경이 되는 이정재의 집과 배우들의 의상 등을 통제했을 것이다. 일반인들이 이질감을 느낄만큼 잘난 인간들의 인공적인 삶을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각잡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한순간 힘을 탁 풀어버리는 것이다. 인공조형물처럼 빈틈없고 공기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밀도있어야할 공간과 상황이 감독의 소심한 연출 때문에 느닷없이 홍상수 영화에서나 볼법한 일상성으로 삐그덕거리는 거다. 사람보단 마네킹에 가까운 역할의 이정재가 중간중간 옆집 오빠같은 목소리로 극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섬찟한 눈빛과 알수 없는 행동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어야 할 윤여정은 어느 순간 일일드라마에서 볼법한 아줌마 연기를 해서 관객을 당황시켰다.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조였다가 한순간 풀어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헐렁한 고무줄 때문에 자꾸 치켜올려야 하는 팬티처럼 불편하고 엉성한 영화인 것이다. 그러니 윤여정이 술에 취해 옷을 벗으며 침대에 쓰러지는 장면에서 관객은 이율배반을 느껴야 하건만 마냥 아줌마스럽던 그녀이기에 그 장면은 또 그렇게 없어도 되었을 밋밋한 장면이 되었다. 배우들에게 오컬트적인 공간을 만들어주고 전원일기를 찍자고 한 걸까? 감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또 하나, 촬영은 정말... 최근에 본 영화중 가장 후지다고 단언한다. 배우의 감정을 잡아내야 할 타임에 어정쩡한 클로즈업으로 몰입을 방해하고 기껏 멋진 장소를 세팅해놓고 무엇을 찍어야할지 모르는 초보처럼 미숙한 앵글이란, 쯧쯧쯧... 무엇보다 전도연의 자살신은 극의 클라이막스로서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장면이었음에도 철렁, 혹은 헉, 하는 감정을 끌어내지도 못하고 마냥 공중에서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모습을 처량하게 담아냈다. 동네 놀이터에서 애들 그네타는 거 구경하는 옆집 삼촌의 시각이 이런 걸까. 개인적으로 영화보는 내내 뭐냐, 뭐냐,,, 하다가 그 장면에서 홋! 했는데 촬영이 그 모냥이라 크게 실망했다. 자살은 사회적 약자가 할 수 있는 복수 중 가장 절박한 복수의 방법이 아닌가. 슬프고 애처롭지만 사회적 강자에게 트라우마를 남기는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복수에 매우 공감했으나 감정을 고조시키지 못하는 촬영때문에 제대로 실망했다. 잘난 배우들을 가지고 이런 연출을 하다니, 게다가 이렇게 후진 촬영이라니... 그런데 정말 이 정도 영화가 칸에서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는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그건 아마도 다른 감독들이 만들어놓은 한국 영화감독들에 대한 기대치가 만들어준 보기좋은 허울 정도가 아닐까. 아쉬움이 너무 많아 좋은 점을 다 말아먹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