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아, 여자와 바이브레이터
히스테리아 Hysteria (2011년) ; 타니아 웩슬러 감독, 휴 댄시, 매기 질렌할 주연
바이브레이터의 탄생실화라는 말에 혹해 영화를 봤다. 여성의 자주권을 주장하는 여자와 여자 환자들의 히스테리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자체가 매우 가벼워 얘기할만한게 별로 없다. 휴 댄시가 귀엽게 나왔다는 것밖에는. 다만 히스테리를 치료하겠다고 중년 노부인들이 줄줄이 병원을 찾아와 의사의 애무를 받는 장면은 재밌었다. 남자가 아니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정신적 육체적 압박으로부터 바이브레이터가 선사하는 자율적 해소법에 대한 재밌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19세기까지 여자의 자위는 병이라고 생각했다는데 남자의 애무는 치료였나보지 하면서 웃기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버자이너 모놀로그>란 책이 떠올랐다. 보지와 클리토리스란 말조차 입밖에 내길 꺼리는 여자들, 쾌락은 남자와의 섹스에서만 얻는 거라고 여겼던 여자들에게 스스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생각지 못한 오르가슴에 너무나 놀라며 눈물까지 흘리더라는 대목이 기억났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보지를 한번 보라며.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그것을 우리는 너무 모른다며. 예쁜 가슴에 대한 관심의 반만큼이라도 좋으니 자신의 보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고 아끼고 사랑해주라는 말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섹스와 오르가슴에 대해 소심하고 수동적인 것이 동양 여자들만의 문제인줄 알았는데 서양 여자들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게 책을 읽던 당시에는 좀 놀라웠다. 그때 나는 연애를 하면 클리토리스와 오르가슴에 대해서는 다 알게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친구들과 있어도 서로의 섹스에 관해서는 함구하는 것이 매너라 생각했고 성숙한 애인과 탐구심 가득한 섹스를 즐기던 이십대 초반의 내겐 낯선 이야기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가 먹어 사석에서도 자신의 섹스 경험담을 털어놓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제야 알았다. 많은 여자들이 아직도 자신의 쾌락이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를뿐 아니라 스스로 쾌락에 도달하는 방법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망설임 없이 털어놓았던 나의 섹스 경험담, 자위와 바이브레이터 사용담은 생각보다 파장이 커서 여러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말하기 좋아하던 이십대 중후반의 나도 신나서 떠들어대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와 얘기를 나눈 사람들이 뒤돌아서 수군대는 이야기가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닌 이상) 더이상 그런 얘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여성운동가 이브 엔슬러의 <버자이너 모놀로그> 북하우스 출간. 버자이너 vagina는 여성의 성기, 보지 또는 질을 뜻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를 보지라고 솔직하고 정확하게 말할 것, 그리고 내몸이 원하는 것에 충실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2년 전인가. 모 잡지에 섹스라이프와 관련된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던 후배가 질문해왔다. "선배, 바이브레이터 그거 아프지 않아? 어떤지 애기좀 해줄래? 그거에 대해 쓰고 싶은데 내가 너무 몰라서"라며. 나름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며 글좀 쓴다 해서 칼럼을 기고하는 걸텐데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나는 더 놀라웠다. "자위는 해봤고?" "아니" "그럼 바이브레이터에 대해 뭐라고 쓰고 싶은데?" "바이브레이터를 쓰면 단련이 돼서 자극에 좀더 예민해진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래서 바이브레이터를 즐겨보자 하는 식으로 쓸려고" "그럼 니가 먼저 써보고 글을 쓰면 되잖아" "그렇긴 한데 좀 그러네"
그런가. 나름 자유연애자에게도 자위는 터부인가 싶었다. 섹스에 대한 족쇄는 어느정도 풀렸으나 여성 자신의 쾌락 추구는 아직도 부끄러운 것일까? 왜? 참고로 나는 종종 자위를 즐기며 몇개의 바이브레이터를 소유하고 있다. 처음 바이브레이터를 산 것은 이십대 중반이었는데 당시 내겐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가끔 만나 섹스를 하지만 연애를 하기엔 감정이 생기지 않았던 남자였는데 내가 섹스 이상의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섹스가 덜 만족스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너무나 열심이어서 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는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하룻밤에도 대여섯번, 잠든 나를 깨워 관계를 했고 술을 많이 마시거나 피곤해서 물건이 서지 않는 때조차 섹스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기껏 여자와 함께 모텔에 왔는데 섹스도 안하고 잠만 자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물건이 서지 않은채 하룻밤을 보내면 내가 자신을 한심하게 볼지 모른다고 생각한 걸까. 그 사람의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다음날 온몸 구석구석이 다 헐어서 밴드까지 붙여야 했던 나는 짜증이 났다. 그리고 밤새 오럴을 해야만 했던 그 남자의 물건도 헐어서 아플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섹스 이상의 관계를 요구하는 남자가 부담스럽게 느껴졌을때, 애정 없이 남자를 만나는게 미안해졌을 즈음 바이브레이터를 샀다. 그리고 그와 헤어졌다. 기나긴 마감을 끝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로에 쩔어 시체처럼 쓰러지고 싶은 순간, 샤워후에 즐기는 바이브레이터는 숙면을 위한 과정이 되었고, 이후 애인이 생긴 뒤에도 어쩌다 한번씩 나는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했다. 사실 바이브레이터가 뭐 대순가. 문제는 오르가슴이다. 오르가슴이 주는 충만함이 삶을 얼마나 매끄럽고 활기차게 만들어주는지 안다면, 남자가 없어서 오르가슴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더 말이 안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자위를 하고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이성과의 스킨십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이성과의 섹스,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한 자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다만 상대가 있거나 없어도 좀더 빠르고 간편하게 오르가슴에 이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건 건강한 생활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 것. 게다가 후배의 말처럼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 자극에 좀더 예민해진다. 내 몸을 좀더 잘 알게 된달까. 전부터 나는 오른쪽 가슴보다는 왼쪽 가슴이 더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서 질도 왼쪽이 더 예민하다는 걸 알았다. 어디를 공략해야 내가 더 만족스러운지 알게 된 거다. 기구를 통해 내손에 전해지는 감촉으로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알게되면 이성과의 섹스도 더 만족스럽게 된다.
열정적인 연애 끝에 결혼했건만 아이를 낳은 뒤부터 남편과의 섹스가 예전만 못하다고 고민하던 친구가 있었다. 아파죽겠는데 혼자 좋다고 헐떡거리는 남편을 보고 어느날은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나. 나이먹고 아이 낳으면 다 이렇게 되는건가 싶어 포기하려고도 했는데 뜨거운 연애를 통해 알게 된 오르가슴에 대한 그리움으로 포기가 안되더라며. 그래서 이것저것 자료도 찾아보고 물어본 결과 출산후 애액이 줄어든 게 문제인걸 알고 러브젤을 사용했는데 그제야 천국을 만났다나 뭐라나. 그 얘길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도 그제사 털어놓는 말이 자기도 예전같지 않은 아내 때문에 힘들었는데 어떻게든 출산 전과 같은 관계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거라고. 그렇게 친구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섹스의 횟수와 오르가슴의 경우수를 보여주는 기사를 진행한 적도 있다. 독자엽서를 통해 수백명에 달하는 여자들의 경험담을 정리했는데 결과는 어이쿠였다. 섹스를 10번 했는데 그중에 오르가슴을 느낀 경우는 2~3번이라면 그외의 경우는 뭘 한거지 싶어 오히려 궁금했다. 섹스의 목적은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쾌락의 끝까지, 오르가슴까지 이르게 해주려는 게 아닌가? 한두번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했다면 몰라도 대부분의 섹스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데 왜 고치려고 하지 않는가 싶었다. 그때 한 선배가 가르치듯 말했다. 누구나 오르가슴을 즐기고 그걸 추구하는 것도 아니며 설사 젊어서 열정적이었던 사람도 그냥 살다보면 그게 별거 아닌 때가 온다고.
오르가슴을 포기한 내 자신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선배 말처럼 아직 내가 젊은 걸지도. 아끼는 후배에게 바이브레이터를 사주겠다고 약속한지 꽤 됐는데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초보자인 후배를 위해 예쁘고 심플한 것을 선물하고 싶은데 수입품이 전부인 국내시장은 매우 협소하여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도 어려울뿐 아니라 재고가 부족한 탓인지 랜덤 발송이라며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을 보내기 일쑤다. 실제로 스틱형 디자인으로 펄이 들어간 상아색 바이브레이터를 주문했는데 검정색에다 이전 버전이라며 220v에서 사용하려면 변압기를 써야 하는 것이 떡하니 배달되어 온 적도 있다. 일본에 가서 예쁜 것을 사오지 않는 이상 국내 시장이 더 커지질 바랄 수밖에. 미안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