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아담 윈가드 감독, 호러블 웨이 투 다이

guno 2013. 1. 18. 01:20

 

 

호러블 웨이 투 다이 A Horrible Way to Die (2010년) ; 아담 윈가드 감독, AJ 보웬, 에이미 세이메츠 주연

 

이 영화 너무 맘에 든다. 아무런 정보도 기대도 없이 봤다가 놀라게 되는 이런 영화가 나는 참 좋다. 감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VHS, Your Next 등의 호러영화를 감독했고 대본을 쓰고 배우로도 활동하는 인디영화계의 샛별이란다. 이 영화는 고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즐길 수 있는 소프트한 내용과 비주얼이고, 호러영화 마니아인 내 입맛에도 딱 맞는다. 깜짝 놀랄만한 극본과 연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헐리우드 영화에 비하면 소품이라 호불호가 갈릴만하며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바람에 시종일관 화면이 흔들리고,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니 편집이 조잡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지막에 다달으면 결국엔 잘했다고 칭찬해줄 수밖에 없다. 겉멋을 부리지도 않고 으스대거나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고 솔직하고 간결해서 아주 멋진.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외진 숲속에 주차한 차안에서 깨어난 개릭. 악몽을 꾼듯 한참을 괴로워하던 개릭은 문을 열고 나가 트렁크를 열고 거기에 입과 손을 테이프로 묶인채 갇혀있던 여자에게 사과한다. "미안해요. 잠깐 졸았어요." 그리고 조심스럽게 여자를 일으켜 세워 숲으로 데려간다. 숲속 그루터기에 여자를 앉히고 잠시 바라보다가 말한다. "괜찮아요. 괜찮을 거에요." 그리고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한참을 발버둥치던 여자가 힘없이 늘어지자 뻐근한듯 두 손을 털어내는 개릭. 담담하게 돌아와 차를 타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마가 지났을까. 연쇄살인범으로 투옥 중이던 개릭이 이송 도중 탈주한다. 이송 경관은 물론 지나가던 운전자도 죽이고 차를 훔쳐 어딘가를 향하는 개릭.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이고 검문을 피하기 위해 또 누군가를 죽여가며 움직이지만 목적지가 있는듯 그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다. 연쇄살인범의 탈주 소식이 연일 매스컴에서 보도되는 가운데 감옥에서부터 개릭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그를 감춰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예측도 나오지만 뉴스 보도를 접하는 개릭의 표정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어느 지방도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사라는 밤마다 알콜중독자 모임에 가는 게 일과다. 금주 세 달째, 어떻게 술을 끊게 되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사라는 말한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그가 그러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요." 모임에서 만난 케빈은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호감을 보이지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 사라의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여전히 개릭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다. 개릭을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워 술을 입에 대고, 아차 싶어 서둘러 술을 하수구에 버리길 일쑤. 개릭은 알콜중독에 심리적으로 불안한 그녀의 곁을 따뜻하게 지켜주던 남자친구였다. 이유없이 약속시간에 늦거나 그녀와 함께 잠들었다가도 새벽에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남자. 그리고 어느 날 밤늦게 집을 나서는 개릭을 따라가 알게된 외진 창고에서 마주한 잔인한 현실. 출동한 경찰에게 그녀는 계속 "...개릭하고는 상관없는 창고일 거에요"라고 말했었다.  

개릭의 탈주 소식을 들으며 불안해하던 사라에게 그녀의 절친 칼라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개릭이 나를 찾아왔어!' 두려움에 떠는 그녀를 위해 케빈은 자신의 별장으로 당분간 피해있자고 한다. 케빈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선 숲속 별장, 사방에 비닐 천막을 씌운 그 곳에 케빈의 친구들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라는 갑자기 날라온 주먹에 맞고 쓰러진다. (...예전에 개릭이 물어본 적이 있었다. 만약에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죽고 싶어? 몰핀 과다복용. 그건 너무 약하다며 자신은 하드코어로 죽고싶다던 개릭. 그는 카미카제 조종사처럼 죽겠다고 했었다.)

정신을 차린 사라.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그녀 주위를 케빈과 그의 친구들이 둘러싸고 있다. 자신들의 우상인 연쇄살인범 개릭을 신고한 여자친구 사라를 찾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며 떠벌린다. 그녀의 친구 칼라도 자신들이 죽였다며 이제 사라도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누군가 노크한다. 조용히 별장에 들어선 개릭. 피를 흘리며 거꾸로 매달린 사라를 흘깃 보고 감옥으로 편지를 보낸 게 너희들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며 의기양양한 세 청년. 개릭을 자신들의 영웅이라 말하면서도 개릭을 향한 총구를 거두지 못하는 불안한 모습도 보인다. "궁금한게 있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묻는 개릭. "당신의 일을 끝내야죠. 이 년을 죽이고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저희가 도울게요" "내가 왜 사라를 죽여야 하지?" "이 년이 당신을 망쳐놨잖아요" "음.. 우린 서로를 이해했고 사랑했어. 행복했지. 망친 건 나지 이 여자가 아냐. 난 사라를 원망하지 않아. 내가 그녀 입장이었어도 똑같이 했을거야. 그리고 난 감옥이 좋아. 진정이 되거든. 사실 병신같은 놈들의 편지만 없었다면 나올 생각도 안했을거야"  순식간에 한 명의 머리에 칼을 꽂아 넣고 총을 빼앗아 다른 한 명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넣은 개릭은 마지막 한 명과 몸싸움을 벌이다 칼을 맞는다. 세 명을 모두 처치하고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진 개릭. 이때 사라가 울면서 말한다. "개릭 날 풀어줘. 할 수 있겠어?"  힘겹게 일어서는 개릭.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안고서 "보고싶었어" 라고 말한다. "알아. 자기야 부탁이야. 제발 날 좀 풀어줘"라고 말하는 사라. 개릭이 일어나 그녀를 묶고 있는 사슬을 벗겨낸다. 풀썩,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 사라가 힘겹게 일어나 개릭을 흘깃 쳐다본다. 두 사람의 따뜻했던 키스의 추억이 잠시 떠오른다. '사랑해.' 하지만 사라는 피를 흘리는 개릭을 뒤로 하고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대로 일어나 별장을 나선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개릭은 그대로 쓰러지고, 눈밭을 달려 도망치는 사라는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첫 장면에서 숲속 살인을 마치고 비에 젖은 길을 달려 사라에게 돌아가던 개릭을 비췄던 저 멀리 아침 햇살이 비장하게 숲을 빠져나오는 사라의 등 뒤에 다시 한번 떠오른다. 영화의 초반, 알콜중독자 모임에서 사라가 기도하던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하루에 하루씩만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