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뛰어넘는 우리영화, 화차 + 용의자X
■ 화차 (2012년) ; 미야베 미유키 원작, 변영주 감독, 이선균, 김민희 주연
■ 용의자X (2012년) ;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방은진 감독, 류승범, 이요원 주연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우리나라 영화감독들, 영화 정말 잘 만든다. 진작에 일본 원작의 책들을 읽었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도 봤지만 내 보기엔 일본 영화보다 심지어 원작보다도 두 영화가 낫다. 답답하고 지루할 정도로 원작의 행간을 그대로 전달하는 일본 영화에 비하면 두 영화는 감독의 시선에서 영화를 해석하고 전달하는 폼새가 야무지고 매력적이다. 지난번 박신우 감독의 <백야행>을 보고 느꼈던 거지만 우리나라 감독들이 일본 원작을 해석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성공한 원작 소설에 무조건 기대고보자는 안일함이 없고 자신의 생각과 색깔을 드러내려는 고집이 강하달까. 미유키 여사의 팬으로서 '화차'를 재밌게 읽은 독자로서 일본 영화는 보고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 삼류였다. 아무생각없이 책의 행간만 따라가다 핵심을 놓치는 그런 영화. 그런데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달랐다. 일본과 다른 한국적 상황에서도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풀어냈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원작 파괴는 오히려 원작을 살리는 변형이라 박수까지 쳤다. 가슴이 벅찰만큼 훌륭한 엔딩이었으니 미유키 여사도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다.
<용의자X>는 정말 제대로다. 일본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감정의 결핍이다. 열정이라 쓰였는데 그 글자에 뜨거움이 없다. 글을 읽을 때 내 나름의 뜨거움을 부여해가며 읽어야 한다. 원작을 읽을 때도 그랬지만 일본 영화는 가관이었다. 용의자X의 헌신이 느껴지지 않는 헌신, 지나치게 원칙을 따르는 무감각한 단죄, 헌신은 받되 자신의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는 여자의 생각없는 이기심, 이 모든 것들이 따로 노는 내용이라 왜 영화화했는지 의도를 모르겠어서 답답할 지경이었다. 용의자X와 그의 사랑을 받는 여인의 캐릭터는 존재감이 없고 그들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인물들만 잔뜩 폼잡고 잘난척을 해대는 그런 영화였다. 그런데 방은진 감독은 '그 남자의 사랑이 단서가 된다'는 카피로 제대로 직구를 날렸다. 카피만 보고도 영화가 보고 싶어서 근질거렸다. 영화를 제대로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고 영화를 보고난 뒤 역시 제대로다 하고 감탄했다. '용의자X의 헌신'이라는 원작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썼지만 헌신이 없었던 일본 영화에 비해 헌신이라는 말을 뺀 방은진 감독의 <용의자X>에는 헌신이 있었다. 세 명의 캐릭터가 제대로 살아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리고 추리의 스킬에 집착하는 일본 원작에서 놓친 몇몇 부분도 방은진 감독은 제대로 메꿔놓았다. <백야행>도 그렇고 <용의자X>까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밥 한번 사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