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vs. 카멜리아_러브 포 세일
항생제 Antiviral (2012년) ;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 케일럽 랜드리 존스, 사라 가돈 주연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연출한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아들인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첫 장편영화. 이미지 아트를 전공한 감독답게 매우 세련된 비주얼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칸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상영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고,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도 소개되었다.
유명인사의 바이러스를 열혈팬들에게 판매하는 클리닉이 있다. 여배우의 감기, 락가수의 후두염, 스포츠선수의 사마귀, 유명사형수의 성병..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질병까지 공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전염성을 없앤 바이러스를 주입해주고, 사람들은 생물학적 교감을 통해 스타와 한몸이 된것 같은 판타지에 빠져든다. 실제로 병에 걸린 유명인사의 몸에서 뽑아낸 바이러스는 같은 증상과 고통을 안겨줌으로써 팬들의 호응을 얻고, 유명인사들은 홍보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바이러스를 판매하는데 적극적이다. 따라서 클리닉은 유명인사들과 계약을 맺고 바이러스를 복제해서 보다 많은 팬들에게 주입하려고 한다.
"이건 2003년 로라 로와의 스캔들로 생긴 한나의 입병 바이러스에요. 그녀의 입술 오른쪽에 생겼던 거니까 당신의 입술 왼쪽에 주입하면 그녀가 당신에게 키스해서 병을 옮긴 것과 마찬가지가 되죠. 완벽한 그녀의 완벽한 바이러스가 당신 몸에 살게 될 거에요"
최고의 인기 여배우 한나 가이스트의 바이러스를 독점공급하는 루카스 클리닉에서 일하는 시드는 자신 또한 바이러스를 주입하는데 중독되어 있을뿐 아니라 그것을 복제해 불법유통업체에 팔아넘기고 있다. 주말이면 한나의 감기 바이러스를 주입해 이틀동안 몸살을 앓고 일어나는게 일상이 된 시드. 어떤 질병이던지 항생제(정확하게는 항바이러스제)가 있는 이상 두려움 없이 즐길 수 있다. 어느날 한나의 바이러스를 추출하는 담당자 데릭이 바이러스 불법유통 혐의로 체포되자 클리닉에서는 시드를 새로운 담당자로 임명하고, 마침 원인불명의 병에 걸린 한나의 바이러스를 추출하기 위해 시드는 그녀를 방문한다. 안대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든 한나의 팔에 직접 주사기를 꽂아 피를 뽑는 시드. 정교하게 만들어진 밀폐용기에 혈액샘플을 담아 나오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직접 만나 혈액을 뽑아냈다는 흥분이 그를 사로잡는다. 급기야 혈액샘플을 회사에 넘기기 전 피를 조금 뽑아내 자신의 몸에 주입하기에 이른다. 언론에서는 그녀가 원인불명의 병에 걸렸다며 얼토당토않은 추측보도를 일삼지만 이제 시드는 그녀가 어떻게 아픈지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날밤 지독한 통증과 함께 악몽에 시달리는 시드. 며칠이나 지난 걸까. 힘겹게 일어나 뉴스를 보는데 왠걸, 한나가 죽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이때부터 그를 쫓는 수상한 사람들. 한나가 죽음으로써 그녀의 바이러스 유통을 금지시킨 것 때문에 불법유통업체에서는 시드를 닦달하고, 그가 아픈 것이 한나의 바이러스를 몰래 주입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한다. 그렇다면 시드에게서 그녀의 바이러스를 얻어야 한다. 실제로 불법유통업체에 납치 감금되어 피를 뽑히고 나온 시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다시 낯선 자들에게 납치된다. 이번엔 한나의 집. 여배우 한나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
"우리는 한나의 병이 변형된 바이러스가 주입되어 생긴 거라는 결과를 얻었어요. 이건 분명한 암살시도죠. 그래서 또다시 암살될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가 죽었다는 거짓 보도를 낸 거에요.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연구하고 있지만 샘플이 너무 훼손된 상태에요. 그녀를 살리기 위해 당신의 바이러스를 연구하게 해주세요."
시드는 한나를 살리고 그가 살기 위해 바이러스 연구에 참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가 한나의 몸에 변형 바이러스를 주입했을까. 가장 유력한 사람은 그녀의 담당자였던 데릭. 연구에 참여하는 한편 데릭의 뒷조사를 하던 시드는 루카스 클리닉의 경쟁업체인 볼&테서가 사건의 배후에 있다는걸 알게된다. 루카스 클리닉과 독점계약한 한나 바이러스의 승승장구를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볼&테서는 데릭을 포섭해 한나의 몸에 죽음의 바이러스를 심은 것이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나는 죽어가고 시드의 병세 또한 심해지는데 치료법은 볼&테서에 있고, 그들은 절대 자신들에게 치료법이 있음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다. 인정하는 순간 한나를 죽인게 자신들임을 자백하는 게 될테니까. 시드는 살아남아야겠다, 한나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볼&테서에 한가지 제안을 한다. 얼마 뒤 볼&테서는 한나의 사후세계를 독점공급한다는 뉴스를 발표한다. 사후세계에 있는 그녀는 원하는 어떤 질병에도 걸릴 수 있다. 디지털화된 한나의 비디오를 보면서 그녀의 팬들은 무한대로 제공되는 그녀의 질병 바이러스를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 시드는 볼&테서의 직원이 되어 한나의 사후세계를 관리, 홍보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떠나고 연구실에 혼자 남은 시드가 조용히 연구실 문을 잠근다. 죽지않고 배양기 안에서 숨만 쉬며 살아있는 한나의 인공 팔뚝을 부드럽게 더듬다가 칼로 살짝 찢는다. 빨간 피가 진하게 흐르는데 한방울이 아깝다는듯 게걸스럽게 빨아먹는 시드, 그가 나지막하게 말한다. "그녀는 너무 완벽해, 그렇지?"
유명인사들의 바이러스가 유통되는 시대, 거기서 뽑아낸 세포로 인공 근육과 살을 키워서 식재료로 판매하는 바이러스 육류시장이 영화에 등장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세포로 키워진 육류를 구입해 스테이크로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정말 저럴수 있을까 싶었다. 저건 인육일까 아닐까 하는. 또 하나, 좋아하는 스타의 피부 패치를 자신의 팔에 이식해서 틈날 때마다 피부를 문지르며 좋아라하는 모습 또한 매우 신기하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스타와 대중의 비뚤어진 욕망에 대한 성찰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 질병에 대한 항생제는 있는지 몰라도 중독에 대한 항생제는 없더라며.
카멜리아_ 러브 포 세일 Love For Sale (2010년) ; 장준환 감독, 강동원, 송혜교 주연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부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옴니버스 영화. 태국, 일본, 한국의 감독들이 부산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멜로영화를 만들었는데,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부산의 과거- 아이언 푸시 Iron Pussy ; 위싯 사사나티엥 (태국감독)
●부산의 현재- 카모메 Kamome ; 유키사다 아사오 (일본감독)
●부산의 미래- 러브 포 세일 Love For Sale ; 장준환 (한국감독)
사랑의 기억을 사들여 돈을 받고 파는 클리닉이 있다. 누군가가 경험한 열렬한 사랑의 기억, 돈이 필요하면 기억을 팔고 돈이 있는 사람은 기억을 산다. 기억에 대한 소유권을 넘기는대신 팔아넘긴 기억은 내안에서 소멸된다. 배고픈 소설가였던 제이는 사랑의 기억을 추출하다 탈출하고, 그 과정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붙잡힌 자신의 연인 보라를 찾고있다. 추출 도중 도망쳤기 때문에 온전히 남아있는 기억도 있지만 몇가지, 왜 그곳에서 기억을 추출하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불완전한 기억을 갖고 자신의 사랑을 추출해간 아방궁 클리닉의 본부와 보라가 있는 곳을 추적하는 제이.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뒤덮힌 미래도시 부산, 텔레비전과 옥외 전광판에서는 연일 사랑 클리닉의 효과를 선전하는 광고와 뉴스들이 쏟아져나온다.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힘든 기억은 지우고 즐거운 기억은 추출해서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 클리닉은 최고의 사랑만을 모아 여러분에게 잊지못할 경험을 선사합니다. 젊고 생생한 연인들의 열렬한 사랑을 경험하세요. 사랑의 기억으로인해 당신은 보다 건강해지고 젊어질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인생이 즐거워집니다. 오늘 당장 최고의 사랑을 구입하세요."
광고에 이어 사랑 클리닉에서 시술을 받고 피부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주부와 십대처럼 아침마다 물건이 불끈불끈 선다는 중년남자의 증언이 이어진다. 최고의 자연산 사랑이야말로 행복한 인생과 장수의 조건이라며, 돈만 있으면 사랑은 얼마든지 살수 있다고 한다.
사랑의 기억을 시술받는데 드는 비용은 한번에 수천만원, 최고의 사랑으로 인정을 받으면 부르는게 값이라는 사랑 클리닉 시장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자랑하는 것은 아방궁 클리닉. 아방궁의 러브마스터 메두사는 사랑의 기억을 추출하는데 뛰어난 재능이 있어 대중들이 원하는 사랑의 기억을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고 하는데 워낙 질좋은 사랑을 고가에 거래하는 덕분에 대한민국 1%만이 접근할 수 있다. 비밀리에 영업을 하다보니 아방궁 클리닉에 대한 신고와 고발도 넘쳐나 부산경찰서 마약계 형사 백반장 또한 몇년째 아방궁 본부를 추적하고 있는 중이다.
추적끝에 아방궁 영업소를 습격한 제이는 아방궁 본부의 출입암호를 얻어내고 부산항의 비밀 콘테이너를 찾아 아방궁 본부의 암호를 두드린다. '사·랑·밖·에·난·몰·라' 신용카드 한도액을 확인한 종업원은 어떤 사랑을 원하냐고 묻고, 제이는 4866이라고 대답한다. 그의 카드로 2억5천만원을 결재한 종업원은 제이의 눈을 가린채 아방궁 본부 깊숙히 그를 안내한다. 지하도를 돌고돌아 도착한 사무실, 이미 그 안엔 유한마담들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때 안쪽에서 나오는 한 부인, 울먹이며 말한다. "너무 멋진 사랑이야~" "어머어머 얼굴색까지 확 변했네" "자기들도 함 볼래? 녹화한거 돌려보자" 그녀들의 호들갑에 종업원이 녹화테이프를 돌리자 제이와 보라의 추억, 사랑파일 4866이 재생된다. 제이와 보라가 키스를 하는데 보라는 시술자로 대체되어 있고, 제이는 시술자를 끌어안고 열렬한 키스를 퍼붓는다. 제이와 시술자, 두 사람이 빗속을 달리고 싸우고 울고 다시 화해하고 뜨겁게 섹스하는 동영상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제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종업원의 호신용 총을 빼앗아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질을 한다. 사무실을 나와 아방궁 깊숙히 들어가는 제이, 드디어 메두사의 방을 찾아 들어가자 등돌린채 서있던 메두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생각보다 늦게 왔네" 제이가 메두사에게 총을 겨누며 말한다. "내 사랑을 찾으러 왔어" 이때 멀리서 들리는 경찰 싸이렌. "뭐야, 경찰까지 엮어서 온 거야?" "돈을 구하려면 어쩔수 없었거든" 제이의 신용카드에 심어진 추적기를 보고 콘테이너를 찾아낸 백반장과 경찰들이 지하도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이때 조용히 돌아서는 메두사, 근데 거기엔 보라가 있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제이, "넌 보라가 아니야!" 흥분해서 마구 총질을 해대는 제이를 향해 보라가 사랑의 기억이 담긴 사랑액을 흔들며 말한다. "네가 원하는게 나야, 아니면 이거야?" 그리고 던져지는 사랑액, 몸을 날려 사랑액을 받아낸 제이를 보라가 뒤에서 덮친다. 보라에게 제압당한 제이, 보라가 제이의 얼굴을 노려보면서 말한다. "네가 잊고 싶었던 기억을 찾아줄게" 그 기억속에서 제이는 알게 된다. 보라는 아방궁의 러브마스터, 최고의 사랑을 양식하겠다는 그녀의 야심찬 실험에 돈을 받고 참가한 제이는 주입된 기억을 통해 보라와 사랑을 키웠다.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을 현실처럼 느끼고 마음속에서 사랑을 양식한 제이, 그런데 실험이 너무 잘되다못해 문제가 발생한다. 현실의 기억은 소멸되고 양식된 기억들만 선명하게 남은 제이가 실험실을 박차고 나와 도주를 한 것이다.
자기가 양식해놓은 사랑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다 뽑아내겠다는 메두사에게 제이가 조용히 말한다. "미안해" 순간, 얼굴이 굳어버리는 메두사. 실은 제이와 보라는 실제 연인이었다. 보라와 헤어진 뒤 제이는 아방궁에 사랑을 팔고 보라를 잊는다. 임신해서 배까지 부른 보라는 제이의 주변을 맴돌지만 차갑고 무심한 제이의 눈을 보며 그가 자신을 완전히 잊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아이를 잃은 뒤 제이에 대한 복수심만 남은 보라는 아방궁의 러브마스터가 되고, 그에 대한 복수로 그가 팔아버린 사랑을 다시 그에게 주입하고 그의 소설을 양식으로 삼아 사랑을 더욱 키워나갔던 것, 어떤 사랑은 실제 경험한 것이고, 어떤 것은 양식된 것이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원해서 키워진 사랑임에는 분명했다.
"기억 나? 오빠 네가 그랬지. 사랑은 꼭 눈 같다고. 눈이 쌓여있을 땐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운것 같지만 녹은 뒤에는 그것만큼 흉한 게 없다고. 그리고 눈은 언젠간 다 녹아버린다고" "아니야. 사랑을 팔고나서도 계속 너의 모습이 떠올랐어. 어느날 내 눈앞에서 울먹이던 낯선 여자의 얼굴이 잊혀지질 않았어. 계속 떠오르는 이유를 몰라서 왜인지도 모르고 그리움에 가득 차서 소설을 쓴 거야. 소설은 우리들의 이야기였어. 그리고 넌 그 소설을 우리의 사랑을 양식하는 데 쓴 거구. 그러니까 보라야, 우리 사랑은 가짜가 아니야" "맞아, 그러니 우리 사랑은 가장 아름답고 비싼 사랑이 될테지" 보라에 의해 사랑의 기억을 추출당하며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제이. 이때 조용히 백반장이 메두사의 방으로 들어온다. "다 끝나가?" "작업할땐 방해하지 말랬잖아" 추출되는 사랑의 기억속에 보라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제이가 기억하는 어느 순간이 떠오른다. 눈밭에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두 사람.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없어질까봐 두려워서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보라에게 제이가 말한다. "우리 북극이나 남극으로 갈까?" "왜?" "거긴 눈이 안 녹잖아, 영원히"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야, 너 사랑한다고.." 추출이 끝나고 완성된 사랑액을 꺼내는 보라. 이때 배신한 백반장이 보라의 등에 총을 쏘고 사랑액을 빼앗는다. 제이의 품에 쓰러진 보라와 제이를 향해 한발씩 더 총알을 쏜 백반장. 제이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며 말한다. "..영원히"
영화의 몇몇 재치있는 장면들이 돋보였다. 아방궁의 암호도 그렇지만 아방궁 종업원의 캐릭터와 중간에 까메오로 나온 장준환 감독의 아내 문소리의 등장도 무척 반가웠다는^^ 입대를 앞둔 강동원의 캐스팅이 확정된 가운데 중국에서 영화촬영을 하다 잠시 한국에 들어온 송혜교를 상대역으로 추천한 것도 문소리였다고. 사랑의 기억을 팔고,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니.. 지나치게 허황되고 또 무척이나 그럴듯해서 공감이 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