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 앤더슨_ 러쉬모어 + 문라이즈 킹덤
【Chapter 2 】남자, 사랑에 빠지다
■ 러쉬모어 RUSHMORE_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 (1998년) ; 유서깊은 명문사립고 러쉬모어엔 교내신문과 학교연감의 편집장이자 불어클럽 회장, 모의 유엔 러시아 대표, 우표수집반 부대표, 토론팀 반장, 라크로스팀 매니저, 서예반 대표, 천문학클럽 창시자, 펜싱팀 반장, 육상부 10종경기 주자, 제2성가대 지휘자, 폭격기반 창시자, 쿵푸클럽 노란띠, 스키트사격반 창시자, 양봉반 대표, 양키 레이싱반 창시자, 연극반 단장 등등을 맡고 있는 맥스 피셔란 학생이 있다. 러쉬모어를 쥐락펴락 하는 보이는 손, 매우 똑똑하고 열정적인 능력자 맥스의 단하나 문제점은 성적이 아주 낮다는 것. 교장은 그를 불러 학사 경고를 내리겠다고 협박한다. 워터게이트에 관한 뛰어난 극본을 써서 장학생으로 입학했지만 공부를 등한시하고 부서활동에만 매진하는 걸 더이상 봐줄 수 없다. 한 과목이라도 더 낙제했다간 퇴학이다!
골치가 좀 아프지만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맥스, 머리도 식힐겸 도서관에서 해저 보물 탐사에 관한 책을 읽는데 페이지를 넘기다가 누군가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한다. "범상한 삶은 널리 알려야 한다_쿠스토" 왠일인지 맥스의 마음에 물결이 일어난다. 찰랑. 메모를 남긴 사람을 찾아 열람기록을 검색한 맥스는 초등반 교사 크로스를 알게된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목소리의 크로스. 그녀를 보는순간 맥스의 마음에서 파도가 출렁인다. 철썩! 그녀에게 멋지게 보이려고 아끼는 빨간 모자까지 쓰고 다가가는 맥스, 벤치에서 담배를 피우던 크로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실례지만 담배를 피운지는 얼마나 되셨냐고 묻는다. 몇살이니? 열다섯 살이요. 아마 그정도. 어휴, 오랫동안 피웠네요. 이젠 끊어야겠어요 라는 맥스의 말에 싱긋 웃으며 눈을 맞추는 크로스. 학교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맥스가 라틴어 강의가 없어진대요 라고 하니까 크로스가 뜻모를 말을 중얼거린다. 뭐라고 한거죠? 라틴어인가요? ..영원한 것은 없을까. 맥스의 사랑이 시작됐다.
사업가 블룸은 자신의 아들 둘을 러쉬모어에 입학시켰고 학교의 이사진이며 수영장도 기부했다. 수영장 개장기념 연설에서 "너희들은 쉽게 여기까지 왔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자로 살테지.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학생이 있다면 조언을 해주겠다. 부잣집 놈들을 사정권 안에 두고 철저히 짓밟아버려라. 명심해라. 뭐든 돈으로 살수 있지만 자존심만은 돈으로 살수 없다는 걸"이라고 해서 맥스를 감동시킨 블룸은 자신의 덜떨어진 아들들에게는 질색하지만 매사 열정적인 맥스는 좋아한다.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기도 하지만 절대 기죽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걸 해내고마는 맥스를 보면 오히려 존경스럽다고까지 생각한다. 맥스와 친구가 되고싶은 블룸. 수족관을 좋아하는 크로스를 감동시키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대형수족관을 설치하려는 맥스를 도와 경비를 대기도 하고 맥스의 부탁으로 크로스에게 편지를 전해주거나 감시도 한다. 중년의 CEO가 고등학생의 꼬봉이 된 셈이다. 그러나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블룸은 맥스를 지지한다. 맥스와 함께 있으면 평범한 어른이 아닌 솔직한 내가 될 수 있다. 맥스의 친구인게 마음에 드는 블룸. 열정과 추진력으로 블룸과 크로스를 압도하는 소년 맥스, 그들은 맥스를 당해낼 수 없지만 그래도 맥스는 아직 어린애일 뿐이다. 크로스는 맥스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고 블룸은 크로스와의 비밀연애로 맥스를 상처입힌다.
블룸의 자동차 바퀴를 펑크내거나 그의 아내를 만나 남편의 불륜을 고자질하는 것으로 복수하는 맥스와 이에는 이, 라는 심정으로 맥스의 자전거를 부수는 블룸의 시소같은 싸움은 감정적으로 매우 타당하여 귀엽기까지 하다. 크로스를 찾아간 맥스. 당신을 기쁘게 하려고 폐지될 라틴어반을 살리고 운동장에 수족관도 설치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는데, 사랑을 위해 이만큼 헌신하는 나를 왜 받아주지 않는가. 맥스를 마음깊이 애정하는 크로스는 사랑은 그런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른다. 느닷없이 키스하려는 맥스를 가볍게 제압한 크로스. 크로스에게 붙들린 맥스, 그제야 맥스가 얼마나 작은 소년이었는지가 드러난다. 맥스, 뭘 원하니? 나하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하려는 거니? ..그건 좀 천박하게 들리네요. 맥스, 네가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면 그렇게는 말 못할거야. 그제서야 맥스는 자신의 이상적인 사랑에 그녀가 원하는 사랑은 없었음을 알게된다. 그리고 크로스는 블룸을 원해서 사랑한다는 것도. 크로스는 맥스에게 라틴어반을 살리고 수족관을 설치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맥스의 아빠는 말했다. 너는 바다와 결혼한 선장과 같은 거야. 그래요, 전 너무 오래 떠나 있었어요 라는 맥스의 말처럼 그는 지금까지 이성에 눈뜰 틈이 없었다. 러쉬모어를 너무 사랑해서 학교에 숨을 불어넣고 친구들의 열정에 불을 지피기 위해 그동안 너무 바빴다. 하지만 뭐, 이제 알았으니 지금부터 그쪽으로도 신경을 쓰면 된다. 상처를 딛고 일어선 맥스는 야심찬 연극을 준비한다. 베트남 전쟁의 포화속에서 두 남녀가 적군으로 만나 사랑을 하게 되는 <천국과 지옥>. 맥스는 자신의 연극을 돌아가신 어머니와 크로스의 죽은 남편에게 헌정한다. 남편을 잊지못해 힘들어하던 크로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마음의 선물. 연극이 성황리에 끝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한 피로연, 다들 춤을 추러 자리를 비우고 어쩌다보니 맥스와 크로스만 남았는데 둘이 함께 춤을 추려는 순간 맥스의 손가락 신호에 맞춰 아주 로맨틱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가만히 맥스의 안경을 벗기는 크로스. 두사람이 플로어에 마주선다. 소년 맥스의 사랑은 이제 시작됐다. 갈증을 느낀다고 컵안의 물이 저절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는 중, 서둘러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맥스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 (2012년) ; 1965년 여름, 아빠 엄마 남동생 셋과 함께 뉴펜잔스섬 써머엔드에 사는 12살 수지가 편지를 한통 받는다. 그 시간, 북아메리카 카키 스카우트 아이반호 캠프에선 샘 대원의 무단이탈을 확인하고 비상벨이 울린다. 캠프 책임자 워드 단장과 섬의 유일한 경찰인 샤프 소장은 샘의 실종을 알리기 위해 집으로 전화를 건다. 댁의 아드님이 없어졌습니다. 그녀석 또 말썽을 부렸군요. 저희는 그딴 녀석을 다시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 알아서들 하세요. 친부모님 맞으십니까? 아니요. 샘의 부모는 몇년전에 죽었소. 우린 양부모요. 샘이 고아란 걸 왜 입단서류에 쓰지 않으셨나요? 무슨 서류? 우리는 지가 알아서 캠프에 간다니까 그런줄 알았는데? 그제서야 샘의 서류가 수상하단걸 눈치챈 워드 단장. 샘은 부모님이 보내서 캠프에 온 것이 아니라 이유가 있어서 스스로 캠프에 들어와 탈출한 것이다. 샘을 찾기 위한 수색이 시작된 가운데 펜잔스섬 전체를 돌며 집집마다 탐문을 하던 중 수지의 집까지 찾아온 샤프 소장, 이렇게 생긴 아이는 본적도 없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는데 수지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뒤따라간다. 외진 곳에서 샤프 소장과 만나는 수지 엄마. 둘이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우며 얘기를 하고 헤어지는데, 이 모습을 멀리서 수지가 망원경으로 보고있다.
이틀동안 카누를 타고 섬을 가로지른 샘, 카누를 풀숲에 숨겨놓고 아름다운 초원을 지나가는데 저 멀리 고양이를 안고 서있는 수지가 보인다. 드디어 만난 두사람. 사실 둘은 1년 전 연극공연에서 만났고, 괴이한 까마귀 분장의 수지를 보고 첫눈에 반한 샘은 그동안 수지와 펜팔을 해왔다. 샘의 캠프 입소와 탈출은 수지와 함께 있기 위해 계획된 것. 1년만에 만난 두아이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수지가 없어졌음을 알게된 수지네 집. 수지 엄마는 아이방에서 샘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제 수색대는 두아이를 찾아야 한다.
샘의 캠프 탈출로 인해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던 아웃사이더 샘이 부모님을 잃고 몇몇 양육가정을 떠돌았으며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일도 겪었음이 드러난다. 수지 또한 부모님 모두 변호사인 풍족한 집안의 외동딸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을것 같지만 사실은 부모님의 골칫거리, 친구 한명 없는 외톨이, 얼마전에는 반친구를 때려 정학 중이란 사실이 알려진다. 그리고 문제투성이 두 아이가 편지를 나누며 서로에게는 최고의 친구가 되었다는 것도. 아이들을 찾아나선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두아이는 꿋꿋하게 목적지에 도착해 환호성을 지른다. 옛날 인디언의 주거지였다는 작은 만. 지도에는 '마일 3.25 조류 통로'라 표시된 이곳은 섬의 해안가에서 움푹 들어간 곳으로, 진작부터 두아이가 함께 살 곳으로 찜해둔 장소다. 이렇게 예쁜데 이름이 별로야. 새 이름을 지어주자. 캠프에서 배운 지식으로 능숙하게 텐트를 치는 샘. 수지가 낚아올린 물고기를 구워 먹으며 얘기를 나눈다. 물고기 머리는 고양이 줄까? 아니 고양이 사료는 가져왔어. 가방 한개를 고양이 사료로 가득 채워온 수지. 나머지 가방엔 그녀가 좋아하는 책들이 담겨있다. 나는 마법에 관한 책이 좋거든. 어? 이거 도서관책이네. 훔친거니? 왜? 너희집은 부자잖아. ..책한테 비밀을 만들어주려는 거야. 가끔씩 이렇게 하면 기분이 나아지거든. 너 우울하니? 왜? 아무말도 하지않는 수지. 샘의 가슴에 달린 여성용 브로치를 가리키며 이건 뭐냐고 묻는다. 엄마의 유품이라는 샘. 있잖아.. 라고 말하는 수지. 부모님이 없는게 더 나은 것 같아.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은 전부 고아야. 조용히 듣고 있던 샘이 말한다. 널 사랑해. 하지만 넌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다음날 아침, 이상한 기운을 느끼고 텐트를 연 샘의 눈에 수지네 가족, 워드 단장과 캠프 대원들, 샤프 소장이 보인다. 수지는 엄마에게 붙들려 끌려가고 워드 단장은 샘에게 편지 한통을 건넨다. 양육포기서. 사회복지사가 곧 올거야. 네 행동 때문에 정신감정을 한 뒤에 고아원에 보내질거라고 하더라. 그날밤 집에서 수지를 목욕시키는 엄마. 어려서는 누구나 방황을 한단다, 엄마도 그랬어. 난 엄마가 싫어. 그런말 하지마. 엄마가 경찰 아저씨랑 만나는거 알아. 순간 말문이 막힌 엄마. 고개를 돌리는데 수지 가방에서 비져나온 팸플릿이 보인다. <문제 아이에 대처하는 법>. 수지 때문에 가져온 건데 이걸 아이가 봤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가 수지를 보며 말한다. 수지, 왜 모든게 너한텐 그렇게 어려운 걸까? 한편 샤프 소장의 집에서 하룻밤을 묶게 된 샘. 방황하는 소년을 위해 샤프 소장은 어른스럽게 타이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넌 아직 어려. 이제부터 인생이 시작되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단다. 아저씬 사랑을 해보셨나요? 그럼. 어떻게 됐어요? 음, 그녀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아! ..아저씬 지금 마흔 살이죠? 그래. 그리고 미혼이구요. 그렇단다. 말해놓고 왠지 쓸쓸해지는 어른. 그날밤 수지 엄마는 샤프 소장을 만나 이별을 고한다. 집으로 돌아와 나란히 누운 남편에게 미안해 여보, 라고 말하는 엄마. 아내의 불륜을 알만한 남편이지만 그 또한 담담하게 당신은 잘못한거 없어 라고 말한다. 수지가 좀 남다르지. 아니면 당신이 수지한테 뭐 특별히 미안한 거라도 있나? 이때 "아직 아픈 상처는 모두요"라고 말하는 엄마. 남편은 바람이 지붕을 열고 나를 날려버렸으면 좋겠어 라고 말한다. 당신한텐 내가 없는게 더 나을테니까. 자책좀 하지 말라는 아내. 왜? 애들한텐 우리가 전부잖아요. 남편이 말한다. 그걸론 충분치 않아.
어른들의 슬픈 현실이 수면 위에 드러난 야심한 밤, 아이반호 캠프에선 어린 대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샘이 재수없긴 해도 고아원에 가면 전기충격기로 고문을 당하고 뇌를 뽑힐거야. 걔가 좀 이상해도 고아니까 우리가 이해해줘야지. 우린 카키 스카우트 대원이잖아. 우리 동료가 고아원에 가게 해선 안돼! 미션 임파서블에 버금가는 노련함으로 아이들은 샘과 수지를 재탈출시킨다. 우리 사촌형이 본대 캠프에서 보급을 담당하고 있어, 거기로 가자! 태풍이 다가오는 밤, 아이들은 카누를 타고 섬을 가로지른다. 다음날 아침 샘을 놓친 샤프 소장, 수지의 재가출에 놀란 수지네 집, 모든 대원을 잃어버린 워드 단장이 망연자실한 가운데 태풍이 섬을 강타한다. 비바람 속에서 도망중인 아이들과 아이들을 수색하는 수색대 전원이 산꼭대기에 있는 교회에서 만나 대치하게 되고, 이 와중에 사회복지사도 교회에 도착한다. 막다른길에 몰린 샘과 수지는 교회의 첨탑으로 올라가고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밧줄을 들고 따라가는 샤프 소장. 이때 그가 무전기로 사회복지사에게 샘의 양육을 맡겠다고 말한다. 미혼이라 입양이 안된다는 말에 수지의 엄마 아빠가 법적 근거를 들어 설득하고 드디어 사회복지사의 양해가 이뤄진 가운데 샤프 소장은 비내리는 교회의 첨탑에서 두아이를 무사히 구출한다. 태풍이 지나간 펜잔스섬, 집이 무너지고 배가 부서졌지만 그 어느때보다 풍성한 농작물이 수확된 가을, 집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 수지와 맞은편에서 그림을 그리는 샘. 태풍으로 인해 지금은 지도에서 사라져버린 그곳, 두아이가 첫날밤을 보낸 '마일 3.25 조류 통로'를 그린 샘의 그림. 그곳 모래사장에 문라이즈 킹덤, 달이 뜨는 왕국이라는 이름이 새겨져있다.
사랑에 빠진 웨스 앤더슨의 주인공들이여 브라보! 외롭고 재미없는 세상이지만 너만 내곁에 있다면, 이라고 고백하는 그들의 순수와 열정에 박수를! 그리고 나약한 어른인 나의 이기적인 사랑에 야유를!! <문라이즈 킹덤>은 화려한 스타 배우들의 끝내주는 연기 앙상블이 돋보이는 영화지만 무엇보다 <러쉬모어>에서 맥스를 연기했던 제이슨 슈왈츠먼이 15년이 흘러 아이반호 캠프 대원의 사촌형으로 나온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