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이쿠에미 료, 깨끗하고 연약한

guno 2013. 12. 8. 09:15

 

 

뭐 해? 친구가 전화를 해왔다. 그 친구로 말하자면 고등학교 1학년때 한반이 되어 3년 내내 단짝으로 지냈는데 이후 대학에 들어가 운동에 몸을 담그면서 세속과 인연을 끊은듯 연락이 뜸해진 친구다. 연락이 잘 되지 않는데 가끔 뜬금없이 연락하는 친구. 대학 들어갈때 보고 다음 만남이 졸업한 뒤였을 정도. 근데 정말 뜬금없이 연락을 해온다. 어느날은 밤 11시에 너네 집 근처에 왔는데 함 볼래? 하고 전화가 왔다. 야, 우리 이사한지 5년 넘었거든. 아 그래? 내가 나갈게 어디냐. 이런 식이다. 예전에 서초동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절, 그 친구가 너 어디서 일하냐? 하고 문자를 보내왔다. 서초동이라고 했더니 음, 지금 볼까? 30분쯤 걸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회사 앞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알고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몇년째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너무 뜬금없어서 왠일로? 무슨일 있냐? 하고 물었더니 우리도 가끔 얼굴보고 살까봐 그런다. 왜? 나이 먹으니 우정이 그립네. 너랑 주먹쥐고 달리던 우정들은 다 어쩌고? 여전하거나 변했거나 다 그렇지. 근데 어른이 아니던 시절의 우정이 새삼 그리워서. 친구의 그리웠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 그럼 연락좀 해. 나는 종종 하잖아. 그럴게. 그랬는데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나는 그래도 일년에 한번은 잘사냐? 하고 문자를 보냈지만 늘 그렇듯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언제 만났는지도 까마득해서 내게 그런 친구가 있었나싶을 정도인데 연락이 왔다. 이사했다고 했지? 어디냐? 음... 내 문자를 받긴 받는구나. 올래? 어.

친구는 마치 어제도 왔었다는듯 아무렇지 않게 두루마리 화장지 한팩을 들고 나타나 소파에 벌렁 누웠다. 어이없지만 변함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그래놓고 자고간다고. 출근 안해? 어, 나 일하는거 잠시 쉬고 국비유학 가. 널 뭘보고 나라에서 유학을 보내? 그러게. 얼마나? 1년. 금방이네. 그래도 나이먹어 유학이라니 열심이구나. 그런가.   

처음에는 뭘 어쩌지 싶었다. 밥해 먹이고 술먹고 비디오를 보고도 시간이 남았다. 내일까지 있겠다는 이 녀석과 뭘 해야 할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요즘도 만화방이라는거 있어? 라고 친구가 먼저 물었다. 글쎄 없을걸. 비디오방도 사라지는 마당에.. 하지만 왠지 그리워졌다. 인터넷으로 검색했더니 집에서 30분 거리에 만화방이 있길래 찾아갔다. 도통 모르겠는 수많은 만화들 중에서 뭘 골라야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친구는 만화방 안에 있는 티비를 보며 희희낙락이었다. 야, 너는 안 고르냐? 만화 보자며? 응 니가 골라. 학교때도 그랬잖아. 나는 니가 고르는거 같이 보면 돼. 그랬나? 그랬다. 언제나 니가 알아서 해 라는 식이다. 너같은 애가 어떻게 학생회장을 했을까. 일년 365일 손가락에 볼펜똥을 묻히고 다니던 공부벌레. 긴 생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 단정한 얼굴을 하고선 늘 전교 1등을 하던 친구다. 이 세상에 자기가 갈 대학은 서울대밖에 없다고 철썩같이 믿던 친구는 질풍노도와 같던 고등학교 시절, 참교육을 외치는 선생님들과 학교비리로 늘 시끄럽던 교정에서 수업거부 운동의 선두에 서면서 서울대와 멀어졌다. 언젠가 학부모 면담이 있던 날, 시장에서 생선을 파시던 그 친구의 어머니는 생선냄새 폴폴 풍기는 앞치마를 벗어 들고 학교에 나타났고, 먹고살려니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이 모양으로 와서 죄송합니다 하고 담임을 만났다. 아이들은 전교 1등의 엄마를 구경하겠다며 모여들었고 나는 친구 어머니의 당당함이 너무 멋져서 눈을 뗄수 없었는데 우리 담임은 아니었다. 그가 보인 경멸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잘 사는 집안의 반듯한 아이들을 모두 제치고 늘 전교 1등을 하는 친구가 맘에 들지 않았던 담임은 수업거부 운동의 중심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때 친구를 교탁 앞으로 불러냈다. 따귀를 날렸다. 너 같은 년이 커서 빨갱이가 되는거야, 뭣도 모르는 것들이 나대니까 우리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지! 니까짓게 뭐라고 수업을 하라마라야! 라고 소리쳤다. 아이들은 우~ 하며 담임에게 야유를 보냈는데 그때 내가 종례도 거부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교탁 앞으로 불려갔고 담임은 출석부를 휘둘렀다. 머리를 세게 맞고 바닥에 넘어졌다. 좆같애, 라고 나도 모르게 말했다. 담임은 발로 다시 한번 나를 찼다.

고등학교는 지옥같았다. 보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고 겪어서는 안되는 것들을 겪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그때, 그 시간을 함께 보낸 우리는 많은 시간을 서로 떨어져 지냈는데도 마치 한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비슷한 구석이 있다. 학교 근처에 대학이 있어서 신발주머니만 숨기면 대학가를 누비며 유흥을 즐길 수 있었던 그 시절, 저렴한 술집과 전통찻집 등을 돌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토론하고 개탄하고 슬퍼했던가. 그때만큼 진지했던 적도 없지 싶은데. 어서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우리는 이제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새삼 만화책이 보고싶은 언니들이 되었다. 가슴이 두근거려 커피를 먹지 않는다는 친구를 위해 모과차를 탔다. 잔뜩 빌려온 만화책을 탑처럼 쌓아놓고 친구는 소파에 누워 만화책을 읽고 나는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시간이 거꾸로 흘러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매사 진지한 탓에 만화책을 정독하는 친구에게 누가 만화책을 그렇게 오래 읽냐고 타박해가며 나는 모처럼 즐거웠다. 왜 우리는 그때 그시절 이러지 못했을까.

빌려온 만화책 중에 이쿠에미 료의 『깨끗하고 연약한』이 있었다. 예쁘장한 순정만화인데 읽으면서 막 울었다. 친구가 어이없다는듯 바라보며 갱년기라 그렇다고, 오메가3를 먹으라고 조언했다. 죽을래? 우리는 웃고말았지만 만화가 꽤 괜찮았다.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시간이 지나 만나고 헤어지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작가, 무슨 생각인걸까 싶어지는. 재밌어서 웃고 그 시절이 떠올라 감상에 젖으며 눈물도 조금씩 흘렸다. 10살, 15살에 친구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10년이 흘러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채 살아간다. 다 잊은척, 어른인척 하지만 사실 조금만 들어가면 여전히 10살의 봄, 15살의 여름에서 살고있다. 그들이 만나 서로에게 묻는다. 어떻게 하면 잊나요? 

 

그 시기는, 그 당시엔 몰랐지만 그때의 일들은 큰 글씨로 진하게 새겨진다. 어른이 되면 흘려듣는 것도 많고 요령이 생겨서 작은 글씨로 적당히 구석탱이에 적어놓을 일도 그때는 겁없이 크게 가운데 써놓아서 지금은 돌아보지 않으려해도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누가 세게 때려도 억, 하고 신음 한번 흘린 뒤 돌아설 수 있지만 그때 맞은 상처는 문신처럼 남는다는 걸 몰랐다. 굳은살의 더깨가 느껴지는 요즘에서야 그때 내가 얼마나 연약했는지 깨닫는다. 만화책을 읽으며 맞아, 그때 우리는 너무 깨끗하고 연약했던 거야. 그래서 문신처럼 새겨진 그 시간들을 이렇게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내 소파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오랜 친구는 진짜 말이 없다. 풍문으로 대학에서 운동을 심하게 했노라고 들었을뿐 그녀석 입으로 들은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만났을 때도 직장얘기는 하지 않고 가족들의 안부와 날씨에 대해서만 얘기했었다. 이제와 무슨 생각으로 국비유학이냐고 묻고 싶은데 대답하지 않을걸 아니까 묻지 않는다. 그러고보니 이 아이에 대해선 고등학교때 알았던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게 별로 없다. 몇년동안 전화 한통 없었던 주제에, 또 몇년이 지나 1년동안 외국에 갔다왔노라고 나중에 말해도 되었을걸 왜 지금 나를 보러 온거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묻고 싶은데 정말 말없이 만화책만 읽는 친구를 보면서 너에겐 어떤 문신들이 새겨졌냐고 묻고 싶어졌다. 같은 시간을 보냈어도 문신은 분명 다를테니까. 친구에게 메일 주소를 받았다. 메일은 읽어줄테지. 문자메시지 이상의 답장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친구는 떠났다. 일년 뒤에 돌아올 테지만 돌아와 바로 연락할것 같진 않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다. 이렇게 띄엄띄엄 보다가 어느날 서로가 알고있는 연락처가 불통일때 우리가 서로를 찾아낼 수 있을까. 매번 그 만남이 마지막일것 같아서 안타까운 친구, 거칠지만 대장부처럼 당당했던 그애의 엄마와 손가락 마디마디 볼펜똥을 묻히고 다니던 모습이 유난히 또렷한 기억으로 새겨진 내 친구. 깨끗하고 연약했던 시기를 함께 보낸 우리의 우정이 또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의 어느날에는 어떤 모습일지. 잘 다녀와. 또 보자.  

 

 

만화가 괜찮다 했더니 일본에서 25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우연히 감동을 안긴 이쿠에미 료라는 작가는 이미 문단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작가였다. 게다가 이 만화, 영화로 만들어져서 지난 10월 개봉까지 했다고 한다. 근데 화려한 스태프와 캐스팅을 보고도 믿음이 안가는건 왜일까. 유명 원작을 드라마나 영화로 만드는데 있어 좀처럼 실력 발휘를 못하는 일본의 연출자들 때문일 것이다. 번번히 감정이입에 실패하는 젊은 연기도 보고싶지 않다. 최근 일본의 메이저 영화들은 지나치게 별로다. 분명 실망스러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이 책을 읽던 순간을 추억하며 영화를 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