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홀로서기, 어레스트 미
어레스트 미 Arrest Me (2014년) ; 장-폴 리렝펠드 감독, 소피 마르소, 미우미우 주연
그녀가 어둔 집안을 쓱 둘러본다. 창문을 닫고 가스밸브를 잠그고 외투를 입은뒤 작은 짐가방을 챙겨 집을 나선다. 현관옆 아들의 방은 굳게 닫힌채 접근을 거부하는 경고음처럼 헤비메탈 음악이 쿵쾅쿵쾅 흘러나오고 있다. 어둠이 내린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길을 걷는다. 건너편 경찰서가 보이는 곳에서 시계를 풀고 반지를 빼서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경찰서 문을 연다. 불 꺼진 사무실, 여형사 한 명이 소파에서 모포를 덮고 자고 있다. 여긴 정말 어둡네요. 부스스한 모습으로 잠에서 깬 여형사가 변명하듯 말한다. 불을 켜두면 취한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불쑥불쑥 들어와서. 근데 무슨 일이시죠? ...몇년 전에 남편이 죽었어요. 자살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아니에요. 내가 죽였어요. 자수를 하고 싶어요.
시간은 과거로 돌아간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던 어느날, 그날도 남편은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내를 달달 들볶는다. 아내가 남편을 진정시키려고 커피를 권하지만 남편은 되려 소리를 지르며 커피잔을 내려친다.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히 부서지는 커피잔, 그녀가 막 갈아입은 유니폼에 커핏물이 튄다. 당장 출근해야 하는데 어떡하냐며 아내가 울먹울먹하는데 남편은 아랑곳하지않고 소리를 지른다. 돈이나 내놓으라고! 돈 어딨어!! 급기야 베란다 화단에 성큼 올라선다. 그녀가 정성껏 기른 화분들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져 나뒹군다. 지금 당장 돈내놓지 않으면 뛰어내릴거야! 남편은 무섭게 그녀를 노려본다. 그순간 그럼 떨어져요! 하고 그녀가 남편을 민다. 남편이 8층 아파트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남편은 좀 놀란 것 같았어요. 떨어지는 남편의 감촉이 손에 남았죠. 나는 너무 맞아서 온몸이 멍투성이였는데 부서진 화분이나 커피가 튄 유니폼 때문에 더 화가 났어요. 우체국 유니폼이었거든요. 참, 전 우체국에서 일해요. 신고하고 바로 경찰이 왔는데 남편이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했어요. 남편은 전에 자살을 시도했던 것 때문에 군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서 경찰은 내 말을 믿었어요. 여형사가 시계를 본다. 밤 9시 15분이 조금 넘었다. 조서를 작성해야 겠군요.
경찰조서 2월 6일.. 키보드를 두드리던 여형사는 이름이나 주소같은건 나중에 합시다. 중요한게 아니니까 라고 말한다. 상황부터 들어볼까요? 남편에게 맞았다고 했죠? ...남편은 저를 때린 다음엔 꼭 우체국으로 전화를 해서 사과하곤 했어요. 다신 안 그러겠다고 했죠. 하지만 폭력은 점점더 심해지고 사과도 빈번해졌죠. 그리고 언젠가부터 남편은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어요. 직장 동료들도 당신의 사정을 알았나요? 아니요. 저는 부끄러웠어요. 상처를 숨기기 위해 일부러 벽에 부딪치거나 넘어졌기 때문에 회사에선 절 덜렁이라고 불렀죠. 남편에게 맞은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넘어지거나 부딪쳤어요. 8년 동안 덜렁이로 살았죠. 그게 살해동기인가요? 글쎄요 하는 얼굴로 그녀가 멍하니 형사를 바라본다. 살인조서에는 동기가 있어야 해요. 남편의 지속적인 구타와 폭력으로 인한 살인, 맞죠? 대답이 없다. 답답한 형사가 재차 묻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자주 맞았는지는 얘기해줄 수 있어요? 매일, 매주, 매달? 글쎄요. 욕하거나 때리지 않을땐 그럴까봐 늘 무서웠어요. 그때 그때 달랐거든요. 물론 그랬겠죠. 그러니까 항상 맞고 시달렸다는 거죠? 아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도 그랬나요? 친구들과 가족모임을 하는 중에도 남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나가버리기 일쑤였고, 그러면 친구들은 남편을 쓰레기라며 욕했어요. 아들이 있어도 마찬가지였구요. 물론 아들에겐 절대 손대지 않아요. 애가 보지 않게 절 때리죠. 그렇다고 조심하는건 아니고 소리쯤은 들려도 상관없다는듯이 때렸어요. 조근조근 이어지는 그녀의 고백과 함께 여형사의 회고가 시작된다. 딸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빠가 걸핏하면 엄마를 때리던 어린시절. 아빠를 완전히 사랑할수도 미워할수도 없었던 나날들. 자기가 소리를 지르면 아빠는 폭력을 멈추고 부끄러운듯 돌아섰지만 잠긴 문 저편에서 들리는 폭력의 소리, 엄마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멍투성이의 엄마는 내가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치지 못하는 걸까, 그러면 이건 모두 내 탓인가.. 형사가 기억하는 풍경이 그녀의 고백과 함께 선명해진다.
어느새 형사는 조서 작성도 잊고 맞은편 그녀의 고백에 마음을 기울인다. 남편은 저를 죽일듯이 때렸고, 저는 언젠가는 남편의 손에 죽을 거라는 걸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는 싫었지만 내가 죽는다면 남편에 의해 살해된 거라는 증거는 남겨야겠다, 경찰에게 단서를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생각도 했죠. 성폭력도 있었나요? 글쎄요. 이상하네. 아내를 때리는 남자들은 대부분 아내를 강간하는데. 에? 강간은 아니죠. 부분데.. 강제로 했어도 강간은 아니에요. 맘은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은 원했으니까. 나참 그게 강간이에요! 이제와서 남편을 감싸기라도 하려는 거에요? 사람이 왜 그래요? 답답하긴, 애초에 그런 놈이랑 왜 결혼까지 한 거에요?!
그녀에게도 핑크빛 추억은 있었다. 친구와 놀러간 댄스장에서 처음 만난 남편은 타고난 춤꾼이었다. 너무 멋진 남편에게 첫눈에 반한 그녀는 그와 함께 춤을 춘 뒤에는 어떻게 되어도 좋단 심정이 되었고, 그의 청혼에 날아갈듯 기쁘기만 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을 앞두고 그의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때 어머니의 태도가 이상했었다. 아들을 잠시 물리고 단둘이 되었을때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결혼을 서두를 필요는 없잖니. 살아보고 결혼하는게 어떨까? 남자는 모두 성격적 결함을 갖고 있단다. 특히 우리 애는.. 너는 그 애를 감당하기 힘들거야.. 그때만 해도 그녀는 사랑하니까 괜찮아요 라고 했지만 결혼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에서 밥을 먹던 남편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화를 내며 포크로 그녀의 팔뚝을 내리 찍었고 그게 시작이 되었다.
그녀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마음이 아픈 형사가 묻는다. 근데 왜 이제와서 자수를 하려는 거에요? 그것도 이 늦은 시간에. 하필이면 왜 오늘? 내일은 안돼요. 왜죠? 어제도 왔었는데 경찰분 앞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어요.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할 거에요. 제발 절 체포해주세요. 남편을 밀어낸 손이 뻣뻣하고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처음엔 손만 아프더니 어깨도 아프고 이제는 온몸이 뻣뻣하고 아파요. 남편을 밀어낸 감각이 온몸에 퍼져서 견딜수가 없어요. 지난 여름엔 아들이 캠프에 가있는 동안 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았어요. 정신병동은 감옥처럼 창문에 쇠창살이 달린거 아세요?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모래 그림을 배웠는데 천연색소로 물들인 모래는 정말 예뻐요. 답답해도 병원에 있는 동안은 괜찮았는데 집에 돌아온 후에는 다시 시작이었어요. 밤에도 잠을 잘 수 없었죠.
형사는 말한다. 힘들어도 차라리 여기서 힘든게 나아요. 감옥에서 죄수가 되는게 어떤건지 당신은 몰라요. 내가 조서를 작성하면 사건이 시작되고 당신은 유치장에 갇혀요. 다시는 돌이킬수 없죠. 저도 알아요. 아니! 당신은 몰라요. 형사는 조서를 작성하던 컴퓨터 화면을 끄고 그녀에게 말한다. 돌아가요. 당신은 결혼해선 안될 사람과 결혼했고 충분히 불행했고 그래서 남편을 밀었어요. 그리고 완전범죄가 됐죠. 그러니 이제 돌아가 열심히 살아요. 싫어요! 하라는대로 해요!! 소리치는 여형사의 얼굴에 남편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녀가 형사를 향해 주먹을 내지른다. 날 체포해요! 무슨 짓이야! 진정해요!! 두 사람의 어설픈 몸싸움이 시작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두팔을 제압당한 그녀가 조용히 흐느낀다. 제발 부탁이에요. 날 체포해줘요. 형사는 피곤한듯 팔을 풀고 책상옆 소파에 주저앉는다. 두손으로 머리를 감싼다. 남편에게 죽도록 맞으며 피해자로 살아온 그녀가, 남편을 죽이지 않았으면 남편 손에 죽었을 그녀가 죄의식에 시달려 온몸이 뻣뻣해지고 잠을 이루지 못하며 급기야 자수를 하겠다니, 왜 그녀는 남들처럼 자신의 범죄가 감춰졌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남편의 부재로 인해 평온해진 삶을 살지 못하는 걸까. 왜 좀더 이기적이지 못한거야? 그러면서 나더러 체포해달라고? 왜 하필이면 나야? 내손으로 당신을 감옥에 보내라니.. 형사는 자신의 엄마를 감옥에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드니 그녀가 자신의 책상 앞에 여전히 조서를 쓰겠다는 일념으로 꿋꿋이 앉아있는게 보인다. 초라한 뒷모습. 형사가 말한다. 난 당신의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거에요. 돌아가요. 싫어요!! 젠장. 더럽게 말도 안들어먹는군.
우체국에서 일하는건 어때요? 형사가 화제를 돌리며 묻는다. 그건 좋아요.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면 여러 사람을 만나죠. 가끔 몸이 불편해서 장보기 힘든 노인들을 위해 편지를 배달하면서 장을 대신 봐주기도 해요. 그분들은 저를 손꼽아 기다리죠. 같이 차를 마시고 얘기도 해요. 그제서야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돈이 부족할땐 가끔 노인들 지갑에서 돈을 더 빼내기도 했지만 다신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가진게 없는 분들께 그러면 안되니까. 그래도 제가 편지를 배달하는 사람들은 전부 절 좋아해줘요. 자랑은 아니지만 어떤 가족은 이사가면서 제게 편지를 남기기도 했어요. 언제나 친절한 당신이 오기를 우리는 늘 기다렸어요. 고마웠어요 우편배달 아가씨, 하고 온가족이 싸인한 편지에요. 그러게요. 팬레터를 받을만큼 인기만점인 우편배달 아가씨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겠어요? 당신은 여기서 할일이 있잖아요. 감옥에 들어가는 것 말고도 당신이 할일이. 세상엔 당신보다 훨씬 나쁜 일을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요.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잘 살아요. 당신이 얼마나 아는지 몰라도 지금 자수하면 더 나쁠수 있다구요. 너무 늦게 자수하는걸 의심하는 고약한 검사를 만나면 양형거래 없이 20년형이 될 수도 있어요. 20년동안 감옥에 갇히는게 어떤건지 알아요? 알아요! 저는 정신병원에서 창살방도 경험했다구요. 감옥은 그에 비할바가 아니에요!! 봐요. 내가 컴퓨터를 끌게요. 집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요. 당신 남편은 피해자가 아니니까. 비밀은 묻어두고 잊어버려요. 싫어요! 체포해주세요!! 도통 말을 듣지 않는 그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던 형사의 눈에 그녀의 작은 짐가방이 보인다. 감옥에 가려고 잠옷이라도 챙겨왔어요? 그녀가 가방을 열자 색색깔 고운 모래가 담인 유리병이 한가득 들어있다. 그녀가 회화용 색깔 모래들을 소개하며 천연색소 모래를 구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한다. 형사가 어이없다는듯 그런 그녀를 바라본다. 감옥으로 놀러가는줄 알아요? 누가 모래 그림을 그리게 해준대요?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요. 감옥에서 삶은 존재하지 않아요. 삶은 여기 있죠. 다시 생각해요. 아직 10시 밖에 안됐으니까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요. 난 당신 이름도 주소도 모르니까 조서도 없어요. 서둘러 외투를 입히고 가방을 쥐어준뒤 그녀를 경찰서 밖으로 내보낸다.
엉겁결에 경찰서를 나온 그녀. 터벅터벅 밤길을 걷는데 어둠속에서 남편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를 붇잡는다. 눈깔아, 대들지마! 까불지마!!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치는 그녀. 골목으로 뛰어들어가니 어느집 창문으로 실내가 보인다.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시키느라 책을 읽어주는 엄마. 아이가 테이블에 고개를 묻고 열심히 글자를 적고 있다. 어느새 집안의 엄마는 그녀가 된다. 열심히 책을 읽어주는데 아들이 고개를 들고 말한다.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집어쳐! 엄마는 도와주려고 그러지.. 웃기지 말라구!! 아들은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벌떡 일어나 무서운 눈을 부라린다. 남편은 죽지 않았다. 그녀가 제대로 죽이지 못한 남편이 아들의 눈속에 살아남았다. 그녀가 발길을 돌린다. 가방을 열어 색깔 모래들을 강둑에 날려버리고 빈손으로 경찰서를 향한다.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놀라서 바라보는 형사를 향해 말한다. 생각할만큼 했어요. 이번엔 꼭 체포해주세요. 내일이면 늦으니까! 어이없이 바라보던 형사가 묻는다. 그건 왜죠? 내일은 남편의 기일이거든요. 10년 공소시효가 끝나요. 그러니까 지금 체포해주세요. 제 마음은 확고해요. 그럼 할수 없군요. 자정까지는 한시간 넘게 남았으니 천천히 조서를 작성하죠. 더이상은 안돼요! 더이상 시간 끌지말고 당장 조서를 작성하고 나를 체포해줘요!! 더이상 말돌리지 말고 체포하라구요!! 제발 감옥에 보내줘요. 아들이 절 괴롭히지 않게 해줘요. 그 말에 놀란 형사가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아들이 괴롭혀요? 어떻게 괴롭히는데요!!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형사를 가만히 바라보는 그녀. 아들은 알아요. 내가 뭘 했는지. 말하지 않을뿐 조용히 나를 추궁하죠. 남편의 3주기가 되던 날 퇴근해 집에 오니 아들이 남편의 사진 액자 3개를 나란히 벽장에 세워뒀더군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내가 집을 비우면 남편의 증명사진을 집안 곳곳에 붙여요. 테이블 위에, 책속에, 접시 바닥에도 붙이고 내가 마시는 커피에도 넣어놓고 모래병에도 넣어놓고 속옷 사이에도 끼워두죠. 점점더 심해졌어요. 지독한 고문이에요. 집안이 온통 남편의 사진으로 가득해도 저는 손도 댈수 없어요. 내가 죽인 사람의 유령을 보는 것 같으니까. 어제는 일하고 돌아와 방문을 여니 제방 벽과 창문을 온통 남편사진으로 도배를 해놨더군요. 천장에 붙인 남편 사진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전 무너졌어요. 제겐 더이상 방법이 없어요. 젠장젠장젠장!! 화가 치밀어오른 형사가 주먹을 쥐고 고개를 숙인 사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권총을 그녀가 잽싸게 거머쥔다. 그리고 형사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책상 앞으로 가요. 조서를 작성해요.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는 형사에게 말한다. 두들겨 맞고 살아온 우편배달 아가씨가 이럴줄은 몰랐겠죠? 하지만 나도 똑똑하다구요. 더이상은 못 참아요. 이젠 내맘대로 살 거에요. 어서요!! 하지만 형사는 컴퓨터에서 등을 돌리고 그녀를 향해 말한다. 당신이 뭘 해도 나는 조서를 작성하지 않을 거에요. 당신을 쏠 거라구요!! 그럼 그렇게 해요. 형사가 키보드를 들어 책상에 내던진다. 산산히 부서져 바닥에 쏟아지는 키보드. 컴퓨터도 책상 아래로 밀어버린다. 쿵 하고 컴퓨터가 떨어지며 일그러진다. 사무실의 소란에 놀라 경비를 서던 경찰이 뛰어들어온다. 손들어! 그녀를 향해 소리친다. 그녀가 울먹이며 권총을 내려놓는다. 순식간에 상황종료. 그녀를 어떻게 할까요? 경찰이 형사에게 묻는다. 자네는 나랑 같이 가서 그녀의 방 벽지를 새로 발라야 돼. 그리고 아들을 만나 혼내줘야지. 그러면 돼. 그렇죠?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그녀가 소리친다. 11시 45분, 시간을 확인한 그녀가 다른 경찰서에 가겠다며 외투를 집어든다. 형사가 황급히 막아선다. 그녀에게 빼앗은 권총을 다시 그녀에게 겨누며 아침이 될때까지 여기서 나갈 수 없다고 위협한다. 당황한 경찰도 내보내고 형사는 그녀를 데리고 유치장으로 향한다. 감옥에 가고 싶댔죠? 여기 있어봐요. 호송되기 직전의 범죄자들이 우글대는 유치장에 그녀를 집어넣고 형사는 퇴근한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다른 형사들이 출근하기전 이른 아침인데 여형사가 제일 먼저 출근했다. 출근하자마자 유치장에서 그녀를 빼낸다. 예비 감옥 경험은 어땠나요? 그보다 더한 곳에서 20년인데 괜찮겠어요? 그녀가 초췌한 모습을 하고 매서운 눈으로 형사를 노려본다. 날 감옥으로 보내줘요. 거참,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이젠 더이상 당신을 체포할 수도 없다구요. 난 당신 이름도 주소도 모르고 사건 조서는 한줄도 작성되지 않았다니까요. 그러니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 당신 삶을 살아요. 형사를 노려보던 그녀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한다. 나한테 이럴수는 없어요. 결혼도 아들도 실패했는데 감옥에 가는 것조차 실패하다니.. 끝나지 않을 거에요. 난 평생 꼼짝할 수 없겠죠.. 도대체 당신은 자신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죠?! 절망적으로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형사가 먹먹하게 바라본다. 경찰서를 나선 그녀가 울먹울먹하며 몇걸음을 떼는데 뒤에서 형사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는다. 어제로 돌아갈 수 있어요. 그녀가 돌아서서 형사를 바라본다. 컴퓨터가 부서졌으니 손으로 조서를 작성하면 날짜를 어제로 할수 있어요. 금세 환해진 얼굴의 그녀가 형사를 따라 경찰서로 들어간다. 조서 작성이 끝나고 그녀가 호송차에 올라탄다. 홀가분한 얼굴의 그녀를 떠나보내는 형사. 의자가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으니 팔걸이 근처에 앉아요. 네 고마워요. 행운을 빌어요. 잘 버텨볼게요. 호송차가 멀어진다. 그녀를 떠나보내는게 엄마를 보내는것 같을줄 알았는데 아빠가 미소를 지으며 호송차를 타고 멀어진다.
그녀는 감옥에 수감됐다. 아들이 면회를 왔다. 칸막이 너머로 아들을 바라보며 그녀가 말한다. 아들의 두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넌 알아야 해.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자수한게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해야 네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밝힐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랬어. 아빠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완벽하지 않았고 내가 죽였어. 난 유죄지만 적어도 굴복하진 않았지. 네가 알길 바래. 네 인생을 위해 중요한 거니까.. 난 이제 됐어. 더이상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고. 더이상 너를 사랑하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너도 이제 알겠지. 네게도 엄마가 있었다는 걸. 매서운 눈을 한 젊은 아들을 건너편에 두고 그녀가 힘차게 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