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야마모토 후미오, 플라나리아

guno 2016. 10. 23. 17:40



집에 오는 길, 아파트 공원 부지 초등학교 후문 앞에 뽑기 아저씨가 나타났다. 낮은 판자 테이블 위에 완성된 뽑기 몇 개 비닐에 싸서 진열해 놓고, 그 옆에는 불도 피웠다. 아저씨는 휴대용 라디오를 켜고 접이식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동전이 가득한 지갑에서 백원짜리 열 개를 골라 내미니까 “사려고?” 물어보신다. “네, 저기 별모양으로 주세요” 천원에 산 별모양 뽑기를 한 손에 들고 가을이 무르익은 공원 숲길을 걸어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딛고 서 있던 그야말로 단단하다고 굳게 믿어 온 대지가 그토록 간단히 무너질 살얼음판이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얼음이 깨지면서 빠져든 물 밑바닥에서 이제 나는 꼼짝없이 얼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거기에는 ‘한가한 시간’이라는 이름의 뜨뜻미지근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속에 누워 있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편안했고, 게다가 나는 그곳을 박차고 수면 위로 떠오를 만한 어떤 동기도 목적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