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아름다운 청춘, 사랑은 끝났다

guno 2010. 2. 16. 02:01

 

사춘기 학생과 중년 여교사와의 사랑,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청춘을 다시 한번 봤다. 오래 전에 봐서 무슨 내용이었더라..가물가물했다.

역시, 풋풋한 요한 비더버그의 매력과 마리카 여사의 농염함이 매우 잘 어울리는 영화다. 이 영화는 사춘기 소년과 중년 여자의 욕망이 순수하게 만나는 과정부터 너무 이기적이어서 치사하고 더럽기까지 한 이별까지의 내용을 담고있다. 맹렬하게 사랑을 갈구하다가 어느 순간 냉정하게 돌변, 사랑의 감정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판하려는 사춘기 소년의 이기심이 미성숙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뤄질 수 없는 욕망의 출구를 소년에게서 찾고, 그것이 배반당한 순간 치졸한 복수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여교사 또한 성숙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근데, 사랑에 성숙한 이별이란 게 있던가. 사랑이란 감정은 너무나 유치하여 사랑하는 동안은 상대방을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상태라고 믿지만, 사실 사랑에 빠진 자신을 위해 뭐든 할 수 있었던 시기일 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랑이든 성장하는 과정의 해소채널이라는 걸 알고 난 다음의 일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보 비더버그 감독이 아들인 요한 비더버그를 영화 주인공으로 하기 위해 아이가 성장할 때까지 9년을 기다려 제작했다는 것. 아들의 사춘기를 영화로 만들어주는 아버지라니 멋지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 영화는 아름다운 청년, 요한 비더버그를 위한 영화임을 보는 내내 알 수 있는데, 아들을 사랑하는 아빠의 시선이 야무지다. 마흔이 훌쩍 넘어 얻은 아들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는 이 영화를 찍고 2년 뒤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요한 비더버그는 더 이상 어느 영화에서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의 아버지만큼 그를 아름다운 눈으로 봐줄 감독은 없는듯 하다.

 

 

 

아름다운 청춘 All Things Fair(1995) ; 보 비더버그 감독, 요한 비더버그, 마리카 라게르크랜츠 주연

(요한 비더버그는 74년생, 영화를 찍을 당시 스물두 살이었다).

 

...여교사와 사랑에 빠진 소년.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무능력한 남편을 피해 몰래 만나는 것까지 스릴감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내와 불륜임이 분명한 소년이 과외를 받는다며 버젓이 집안에 드나드는 걸 허락하는 남편의 무심함에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무엇이 원인인진 몰라도 차가운 아내의 몰인정한 태도에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는 남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이 소년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런 남편의 마음을 이용해 소년을 침대로 유혹하는 여교사는 한순간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져 반발하게 된 소년. 사랑의 감정이 변질되면 더 무서운 비판자가 되기 마련이다. 누구보다 더 가까이 여교사의 마음속으로 들어갔기에 더욱더 잔인한 복수를 계획할 수 있다. 

그녀와의 대치기간, 소년에게 의지가 되었던 형이 전쟁에서 죽고 장례식을 치룬다. 벽에 걸린 그림처럼 소년의 인생에 있는듯없는듯 했던 엄마가 소년에게 넌지시 말한다. "네가 뭘 하든 엄마는 널 믿어", 소년은 그 말에 왠지 안심이 된다. 그리고 존재 자체가 소년에게는 무시의 대상이었던 아빠의 등 뒤로 다가가 우는 아빠를 꼬옥 끌어안는다. 따뜻한 가족의 소중함까지 느껴버린 소년은 정의감으로 무장한채 불륜녀를 향한 복수의 전사가 되어 여교사를 향한 칼날을 세운다. 마치 자신의 사랑은 그녀에게 유혹되었던 것뿐이라는 듯.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여교사가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책들을 훔쳐 집밖으로 나서는 소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다. 남편이라는 현실에서 책으로, 혹은 소년과의 불장난으로 도피하던 여교사에게 소년이 책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통쾌한 복수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상대에게 상처를 줄지 알고 그것을 실천하기 시작한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아름다운 청춘은 끝났다. 한없이 이기적이라 더할나위없이 소중했던 소년의 순수도 사라졌다. 이타심이라는 모순을 만나게 되는순간 당신에게 순수한 사랑은 추억으로만 남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