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다 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파피용

guno 2010. 2. 19. 23:46

 

 

어떤 일에든 그에 맞는 때가 있다는 말이 딱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파피용>은 2007년 출간되자마자 구입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는 책이었다. 몇장 읽다 책꽂이에 꽂아놓고 잊었는데, 요며칠 책이 어찌나 당기는지 뭐좀 읽을게 없을까 두리번거리다 책을 펼쳤다. 집중해서 읽기 시작하니까 손을 놓을 수 없어서 8시간만에 다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난 소감은 다시 시작하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것. 현실의 파괴없이 현실위에 세울 수 있는 새로운 미래란 없다는.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행성을 찾아 우주로 떠나는 여행. 새로운 인류를 만들기 위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 14만4천명을 엄선해서 우주선에 태우고 여행을 떠났는데 1251년 후, 새로운 행성에 도착한 인간은 남녀 한쌍이고 우여곡절 끝에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어 새로운 인류가 첫발을 내딛었다는. 베르베르는 뛰어난 통찰이나 위대한 철학이 있어서 유명작가가 된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이야기꾼이라는 점이 많은 사람이 그의 책을 읽는 이유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재밌게 읽었다.

 

 

 

 

 

*파피용(papillon)은 프랑스어로 '나비' 혹은 '나방'이라는 의미로, 책속에 등장하는 태양 에너지로 항해하는 거대한 우주 범선의 이름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세 가지 적과 맞서게 된다. 첫 번째는 그 시도와 정반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두 번째는 똑같이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들은 당신이 아이디어를 훔쳐냈다고 생각하고 당신을 때려눕힐 때를 엿보고 있다가 순식간에 아이디어를 베껴 버린다. 세 번째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일체의 변화와 독창적인 시도에 적대적으로 반응하는 다수의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가 수적으로 가장 우세하고, 또 가장 악착같이 달려들어 당신을 방해한다.

 

"고통은 왜 존재하는 거죠?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란다. 불에서 손을 떼게 하려면 고통이라는 자극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희귀병 중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단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는 병이지. 뜨거운 불판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가 살이 타는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비로소 깜짝 놀라는 거야. 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놀랐다."

 

"최초로 물 밖으로 나와 육지로 기어 올라온 물고기의 심정이 어땠을까. 물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거야. 사실 다시 물로 돌아간 물고기도 많으니까. 소수의 물고기들만이 그 당황스러운 서식 환경에 적응했어. 불만에 찬 물고기들이었지. 물속에서 사는 게 편치 않았던 물고기들. 편안함을 느낀다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생길 이유가 전혀 없겠지. 고통만이 우리를 일깨우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하게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위해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떠나는 파피용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군인, 목사… 이렇게 세 종류다. 파피용은 정부도 군대도 종교도 없는 최초의 사회가 될 것이다. 권력과 폭력, 신앙이야말로 건전한 사회에 기생하며 부패를 조장하는 것들이니까.

 

"역설이지. 밤보다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정도밖에 볼 수 없거든.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시야가 제한돼. 하지만 밤에는 몇 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볼 수 있어. 멀리 볼 수 있단 얘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