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왔다. 어딜 가도 비릿한 냄새가 난다. 지하철 안내방송에서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른 아침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다 창밖으로 일출을 봤다. 일출을 보게 될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던 터라 내가 보고있는 게 일출 맞나? 한참을 쳐다봤다. 항구에선 뿡뿡 방귀 뀌는 것처럼 뱃고동소리가 간간히 들려온다. 자갈치시장에 가서 술안주로 먹게 적당히 담아달라고 했더니 전어와 우럭 2만원어치를 스티로폼 도시락통에 가득 담아준다. 좌판에서 말린 고래고기를 안주삼아 소주를 드시는 아저씨들이 부러워 나도 그럼, 하고 한자리 끼었다가 엄청난 비린내에 항복했다. 이건 아직 못 먹겠다. 유흥가 한복판에 있는 실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용두산공원에 올라 2천원을 주고 전망대에 들어갔다. 탁 트인 항구와 오밀조밀한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말 멋지다. 부산의 대표 사찰이라는 범어사에도 갔다. 입구에서 파는 식혜를 한병 사들고 천천히 오르는 길은 고즈넉해서 맘에 들었다. 여기저기 공사 중이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일주문으로 시작해 대웅전, 관음전, 나한전 등 본당의 위용이 대단했다. 대웅전에 들어가 방석 깔고 절을 올린 뒤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오래되고 낡았지만 아직도 화려했던 시절의 고고함을 잃지 않은 모습이 좋았다. 가끔 새가 들어와 날개를 푸덕거리며 비행을 했다. 인자한 부처님 모습을 보며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하고 빌었다. 태종대에도 갔다. 아랫도리가 저릿저릿하고 멀미가 나올만큼 발밑의 바다는 웅장했다. 살아있는 것처럼 용트림했다. 질끈 묶은 머리가 바닷바람에 무참히 흐트러졌다. 나도 모르게 안경을 붙잡았다. 꽤 무섭다 하고 있는데 저만치 아래, 파도치는 바위 위에서 바다낚시를 하는 아저씨가 보였다. 위에서 보기에도 아찔한데 저런 곳에서 낚시라니, 바다낚시란 대단하구나 새삼 감탄했다. 무릎을 압박하는 계단에 굴하지 않고 등대까지 올라갔다. 태종대 곳곳에 관광객이 넘쳐났는데 등대는 비어있었다. 부산에 와서 오랜만에 접하는 고요함, 생수 한통을 다 비우고 내려와 그날 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랐다. 짧게 자른 머리가 상쾌하다. 부산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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