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노트

>할아버지이야기

guno 2013. 10. 11. 00:20

 

 

아버지는 맏아들이지만 누나가 일곱이나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누나들. 할아버지는 네 형제중 막내셨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할아버지를 제외한 형제분들이 모두 아들을 얻지 못했다. 형들이 딸만 줄줄이 낳을 동안 할아버지는 아들 넷, 딸 하나를 얻었고 어느새 문중의 중심이 되셨다. 쟁쟁한 형들의 그늘에서 막내로 철없이 살았건만 결혼하고 아들을 줄줄이 낳으니 그제서야 사람들의 대접이 달라졌고. 말없고 조용한 성격이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유명한 한량이 되셨다. 아들을 넷이나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며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돈과 폐물을 밑천 삼아 할아버지는 노름도 하고 첩도 두셨다. 아들을 낳지 못한 할아버지의 형들은 어째선지 모두들 일찍 세상을 등지셨고, 세 명의 과부 형수들과 일곱이나 되는 여자 조카들까지 떠맡게 된 할아버지는 그녀들의 수발까지 받아가며 더욱더 대단한 한량이 되셨다. 그런 할아버지가 한량 짓을 관두고 아들을 줄줄이 낳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건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부터라고 했다. 할아버지가 한량 짓을 하기 전까지 부부 금슬이 매우 좋았다던 두 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첩살이를 해도 다 이해해주셨다고 한다. 형들의 그늘에 가려 맥없이 살던 막내라 그렇다고, 노는 것도 인이 박힌 사람이나 하는 거지,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금세 지쳐서 예전으로 돌아올 거라고 말하곤 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집을 비운 사이에 다섯 아이들을 키우며 맏며느리 아닌 맏며느리가 되어 집안 대소사를 치루다 어느날 과로로 쓰러져 그만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금슬 좋은 막내 부부로 시작해 아들을 줄줄이 낳으며 행복하게 살던 두 사람의 마지막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할아버지는 뒤늦게 노름도 관두고 첩살이도 끊은채 다시 성실하고 조용한 농사꾼으로 돌아왔는데 문제는 자식들에게 애정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으셨단 거다. 한량 짓을 그만 두는 것과 동시에 자식들의 아비 노릇도 그만 둔 것처럼 일만 하셨다는 할아버지. 덕분에 아버지는 어미를 일찍 여의고 아비의 사랑조차 받지 못하는 장손을 측은하게 생각한 여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자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벽에 걸린 할머니 사진 보기를 좋아했다. 사람들이 나보고 할머니를 닮았다는 소리에 호기심이 생겼다. 유관순 열사처럼 생겼는데 그보다는 곱상한 얼굴이다. 막내 며느리로 시집왔지만 어느새 맏며느리가 되어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하고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할아버지를 살뜰이 챙기셨다는 할머니는 웃는 것도 아니고 슬픈 것도 아니고 뚱한 것도 아니고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렇게 단정한 한복 차림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가 좋았다. 맏아들로 태어나 자신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엄청난 여자들의 무리에 둘러싸여 어리광쟁이로 자란 아버지와는 철들기 전부터 삐걱댔지만 할아버지는 달랐다. 일년에 한두번, 할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시는 날이면 친구들과도 놀러나가지 않고 할아버지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하루종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움직일 때마다 부스럭 소리가 나던 한복 저고리, 바람이 불면 근사하게 날리는 두루마기, 듬성듬성한 머리카락도 꼬불꼬불한 수염도 모두 새하얀 색이었다. 말주변이 없으셨지만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손은 따뜻했고 마디마디 도드라져 알이 배긴 손가락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근사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려서는 몸이 약했다. 내 위로 엄마가 임신 7개월에 사산한 남자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남들은 칠삭둥이도 낳는다는 마당에 엄마는 임신 7개월째 뱃속의 아이가 죽어버린 충격에 휩싸였고, 다시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싶을만큼 힘드셨다는데 그런 사정을 봐줄리 없는 아버지는 엄마를 보살피지 않았다. 그렇게 사산을 겪은지 얼마 안돼 엄마 뱃속에 들어선게 나다. 엄마는 아이를 잃은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아이를 갖게 되어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이렇게 위로하셨다고 한다. 칠칠맞게 행동해서 아들을 잃었다고 문중에서 말이 많은데 이렇게라도 해서 빨리 아들을 낳아야 당신한테 좋은 거라고. 내가 다 당신 입장 생각해서 그런거니까 이번에야말로 조심하라고. 엄마는 덜컥 겁을 먹었고 그래서 그런지 나를 배고 시름시름 앓았다고 한다. 또 다시 뱃속 아이를 잃어버릴까봐 걱정이 돼서 임신하고도 비쩍비쩍 말라가는 엄마를 측은하게 생각한 할아버지가 용하다는 한의원에 가서 한약까지 지어주셨다고 한다. 덕분에 기운을 차린 엄마는 태동이 심한 걸 보니 사내 녀석이 분명하다고 했고, 할아버지께서도 꿈에 손주를 안으셨다고 해서 온가족이 아들을 기다렸는데 열달이 지나 태어난건 계집인 나였다. 계집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예뻐한 건 엄마와 할아버지 둘뿐이지 싶다.

심장이 약했다. 걸핏하면 쓰러지기 일쑤였고 낮동안 심하게 놀거나 뭐에 놀란 일이 있으면 자다가도 비명을 지르며 자지러졌다. 지금도 엄마가 펑펑 울면서 물수건으로 나를 닦아내리던 손길을 기억한다. 여섯살이던 해 겨울이었나. 아버지와 터울이 심한 삼촌들이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뒤늦게 상경하여 엄마는 우리 네 남매와 함께 세명의 삼촌들까지 보살펴야 했는데 할아버지는 그게 안쓰러우셨는지 나를 시골로 데려가면 어떨까 하셨다. 시골 공기를 맡으면 건강해지지 않겠냐고. 엄마는 멀쩡한 애도 아니고 아픈 애를 보내는게 며느리로서 할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겠다고 했다. 그 날을 나는 아주 또렷하게 기억한다. 엄마가 괜찮다고 해서 할아버지는 혼자 시골로 내려가시려고 집을 나서시는데 내가 할어버지의 손을 붙잡았다. 나 할아버지랑 살래. 엄마는 애가 왜 이러지 하며 말리셨지만 나도 만만치 않았다. 난 할아버지가 좋아. 할아버지랑 살거야. 엄마가 시골에 가면 친구도 없고 장난감도 없다고 겁을 줬지만 나는 그래도 할아버지랑 살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그래서 결국 짐은 나중에 보내겠노라는 엄마를 집앞에 두고 나는 냉정히 돌아섰다. (지금도 엄마는 말하곤 한다. 어린 계집애가 할아버지 손을 잡고 엄마 빠빠~ 하며 돌아서더라고. 저러다 오겠지 했는데 한번 돌아보지도 않더라고.)

 

그렇게 아무 준비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시골에 가서 1년을 살았다. 늘그막에 할아버지의 수발을 들라며 문중에서 들인 새할머니도 어린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1년을 살았는데 기억은 아주 단편적으로 남았다. 넓은 마당에 도화지마냥 하얀 눈이 소복히 내린 겨울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대야에 담아 세숫물을 준비하시던 새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는 나란히 서서 댓돌 위에 놓인 두 개의 대야에 머리를 박고 세수를 했고 그러고 나면 할아버지는 수건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닦아주신다. 뒷마당에 떨어진 밤송이를 내가 주우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에비~ 하시고는 발로 밤송이를 까서 작은 밤톨을 내손에 쥐어주신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렇잖아도 질퍽거리는 땅이 여기저기 퍼질러진 소똥과 뒤섞여 발이 푹푹 빠지는 늪이 되곤 했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번쩍번쩍 들어올려 발을 빼주신다. 소똥 냄새 진동하는 진창길에서 내가 까르르 웃는다. 장에 다녀오신 할아버지가 새할머니 몰래 조용히 나를 불러내 복숭아캔을 보여주신다. 드륵드륵 캔을 따고 숟가락으로 뽀얀 복숭아 조각을 떠서 입에 넣어주신다. 내가 먹는걸 보면서 예쁘다 예쁘다 하며 웃으신다. 여기저기 집안 대소사에 내손을 잡고 다니시는 할아버지. 친척집 마당에서 애들과 놀고 있으면 일을 끝낸 할아버지가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얼른 할아버지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온다. 한여름, 집안의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놓은 바람부는 어느 날, 나는 담뱃통에 담긴 담뱃가루를 반듯하게 잘라놓은 네모난 종이 위에 덜어 돌돌 말고 야무지게 침을 발라 할아버지의 담배를 준비한다.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잔뜩 만들어놓았더니 할아버지가 미리 만들어놓으면 맛이 없노라고, 딱 다섯개만 만들어놓고 그만두라 하신다. 할아버지가 담배를 피워서 준비된 게 다섯개가 안되면 내가 또 담배를 말아 다섯개를 채워놓으라며, 할아버지는 그게 내 임무라 하신다. 담뱃가루를 바닥에 흘리지 않고 종이 위에 적당히 담아 날씬하게 돌돌 말고 침을 발라 벌어지지 않게 만드는게 익숙해져서 나는 너무 재밌는데 계속 하고싶은데 하지말라 하시니 맥이 빠져 멍하니 앉아 활짝 열어놓은 문밖으로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과 방안까지 들어와 머리카락을 날리는 바람을 넋놓고 바라본다. 내맘을 꿰뚫어본 할아버지가 서둘러 담배 한대를 피우시면 담배 연기가 솔솔 바람과 함께 방안에 흩날린다. 나는 신이 나서 할아버지 내가 담배 말아줄게 하며 담뱃통에 손을 집어 넣는다. 

어려서부터 불을 좋아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는 새할머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아궁이를 바라보는 게 큰 즐거움었다. 타닥타닥 나뭇가지 타는 소리, 소의 혀처럼 낼름낼름 약을 올리는 불길이 재밌었다. 어느날은 밤늦게 뒷간을 다녀오다 물을 마시려고 부엌에 들어갔는데 아궁이의 불이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불을 살려야겠단 생각에 부엌 한켠에 쌓아놓은 나뭇가지를 아궁이에 넣고 계속 불을 지폈다. 불을 바라보느라 넋을 놓았나 보다. 어느순간 새할머니가 뛰쳐 나오셨다. 방이 너무 뜨거워 잠을 깨셨다고, 이렇게 하면 방바닥이 새카맣게 다 타버리는데 어쩌냐고, 할아버지도 등을 다 데이셨다며 계집애가 이 밤에 겁도 없이 나와 집에 불을 내게 생겼다고 큰소리를 치신다. 할아버지까지 나오셔서 괜찮으니까 내버려두라며 나를 얼른 방으로 밀어넣으신다. 다음날 안방 아랫목,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자리가 시커멓게 탄 것을 보고 울컥 눈물이 난다. 내가 할아버지를 태워먹을뻔 했어.

이것이 일년간의 추억. 그리고 어느날 학교에 보내야 한다며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나는 엄마손을 붙잡고 할아버지 집을 떠났고, 2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돌아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는 새벽에 걸려왔다.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바빴고 엄마는 펑펑 울면서 짐을 꾸렸다. 시골집 근처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우리 가족은 비온 뒤라 질퍽해진 황톳길에 발이 푹푹 빠져가며 걸었는데 나는 익숙한 그 길을 걸으며 빨리 가서 할어버지를 봐야겠다 싶었다. 내 키가 얼마나 컸는지 보여줘야지. 그때까진 사람이 죽는게 어떤 건지 몰랐던거 같다. 내가 시커멓게 태워먹은 아랫목은 어느새 께끗한 종이가 발라져있는데 그 위에 막대기처럼 누운 사람. 하얀 한복을 입은건 알겠는데 얼굴까지 하얀 천으로 가린 무시무시한 침묵의 막대기가 할아버지라고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얼른 그 앞에 가서 펑펑 눈물을 쏟으시는데 나는 윗목에 앉아 꿈쩍할 수가 없었다. 무섭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됐다. 형제들은 얼른 밖으로 나가고 어른들은 다같이 모여 이런저런 상의를 하시고 나가는 어른들, 새로 오는 친척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윗목 한구석에 망부석처럼 앉은 나는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고 내내 그렇게 앉아 할아버지를 바라봤다. 하얀천 아래의 할아버지 얼굴을 보고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할아버지에게서 눈을 뗄 수도 없었다. 죽음이란 얼마나 냉정한 이별인가. 나를 보고 웃던 눈동자,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온기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저 하얀 막대기 안에 할아버지가 있는 걸까. 아니면 할아버지는 더이상 그 안에 없는 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팽겨쳐진 기분, 나는 버림받은 걸까.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한 첫 실연이었다.

장례가 시작됐다. 넓은 마당 곳곳에 자리가 깔리고 상이 놓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술과 음식을 먹고 떠나갔다. 상복을 입은 가족들은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를 모신 관 앞에서 슬프게 곡을 했다. 하지만 곡이 끝나면 다시 부엌으로 손님상으로 제자리를 찾아가 자신의 일들을 했고, 나는 마루에 앉아 형식적으로 곡을 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미워했다. 음식을 만드는 여자들 사이에서 간간히 웃음소리가 들린다. 술에 취한 손님들과 그들을 대접하는 남자들의 얼굴에서 비통함은 보이지 않는다. 슬픔은 너무나 금세 지나가버렸다. 곡을 해야 할 순간, 그들은 어느새 형식적인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아이고오~~ 나는 정말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싶었다. 여긴 우리 할아버지 집이야. 다 나가 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할아버지의 상여가 집을 나서는 날, 색색깔 화려한 천과 종이로 휘감긴 상여가 장정들의 어깨에 놓여 집을 나서고 가족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 줄에도 서열이 있어서 어르신들이 한사람 한사람 줄을 맞춰 세우신다. 그 와중에 계집아이인 나는 밖으로 밀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어린 내가 낄 자리가 아니라했다. 중요한 순간에 내가 아프기라도 할까봐 엄마는 내게 따라오지 말라며 엄한 눈을 했다. 할아버지와 가장 친한 것도 나고 할아버지와 같이 산 것도 난데 할아버지와 친하지도 않은 오빠가 아버지와 함께 상주가 되어 할아버지의 상여를 따라가는게 분했다. 상여가 떠난 뒤 친척 아줌마들의 눈을 피해 집을 뛰쳐나왔다. 내게는 익숙한 동네를 냅다 뛰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뛰어가지 않으면 놓칠것 같아 무작정 뛰었다. 한참을 뛰다보니 어느새 들판의 한가운데 들어섰는데 풀이 너무 우거져 무서웠다. 잘못 들어섰다. 길이 보이지 않아. 그때 저멀리 할아버지의 상여가 산등성이를 오르는게 보였다. 상여꾼들의 노랫소리, 바람에 펄럭이는 할아버지의 상여는 참 예뻤다. 그 뒤로 길게 사람들이 구부정하게 서서 상여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뭐라고 한마디라도 했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다만 무섭게 키가 큰 풀숲에 우두커니 서서 오래오래 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고 그순간 바람이 불었다는 걸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