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노트

故 김대중 대통령 추모의 글

guno 2010. 2. 8. 07:48

 

2009년 8월 18일 오후 1시 43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992년 겨울, 광주에서 보낸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끝 무렵이었다. 시내버스 안에 앉아 그 소식을 들었다. 창백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버스 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얕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마주 보기를 피하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라디오 소리만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가 정계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뉴스는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알겠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겨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젠장, 겨울치고는 햇볕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햇볕이 차 안으로 쏟아지지만 않았더라도 누군가 울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도 이길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 한구석에 있도록 간신히 허락받은 것처럼 느껴졌다. 결혼도, 취직도, 승진도, 이제 없는 살림을 쪼개 우리끼리 알아서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억울했다.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그가 정계로 되돌아오고, 약속을 깼다고 주위에서 비아냥댈 때 난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으리라. 그에게는 있어야 할 자리가 있었다. 그는 침묵 속의 말이었으며, 죽음을 책임진 삶이었다. 그는 내내 모욕에 맞선 의연함이었고, 호전 속의 평화였다. 그는 그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그와 함께 ‘거인의 시대’가 사그라졌다. 나를 포함해 이제 자잘한 욕망이나 셈하는 삶만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무참하다. ..이 글의 지역성과 시대착오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1997년 이후 그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었던 만큼, 그 이전에는 그가 전라도와 특별한 관계였다는 것도 함께 기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전라도를 ‘위해’ 정치를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전라도와 ‘함께’ 정치를 했다는 말이다.  _ 이찬웅(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씨가 쓴 글 중에서.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많은 추모의 글을 접했는데, 이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