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lice In Wonderland (2010, 미국, 108분) ;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미아 와시코우스카, 헬레나 본햄 카터, 앤 헤더웨이 주연
어렸을 때 아주 오랬동안, 나는 딴 세계에서 왔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시절이 있다. 이상한 옷을 입고 하교길에 나를 따라오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쳐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한동안 나를 뚫어져라 보곤 했다. 그래서 저 사람은 다른 세계에서 나를 감시하라고 보낸 사람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어떤 집앞에 가게 됐는데, 대문이 열리면서 집 아래로 시커먼 구멍이 나를 빨아들이려고 불길을 낼름낼름거리는 꿈을, 똑같은 꿈을 몇년이나 꾸면서 그 세계가 내 꿈속에 있고, 언젠가 꿈에서 깨지 못하는 날은 그 세계가 나를 데려가는 날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시시한 현실보다 상상으로 언어소통하고 마법으로 행동하는 그런 세계가 있기를, 제발 있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됐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팀 버튼의 영화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누구나 자기만의 원더랜드를 가지고 있고, 지금은 잊었을지언정 어딘가 당신의 원더랜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여서가 아니라 <배트맨>, <가위손>, <빅피쉬>, <유령신부>, <찰리와 초콜릿공장>, <스위니 토드> 등이 모두 그랬다. 그는 영화라는 수단을 통해 "당신의 원더랜드를 잊지마"라고 말하는 것 같다. 판타지를 좋아하긴 하지만 왠지 내키지 않았던 이 영화를 보면서 팀 버튼이 선사하는 원더랜드에 흠뻑 빠져들었다. 너무 성숙한 앨리스가 등장해 순수한 원더랜드를 오염시킨 듯한 느낌만 빼면 아주 좋았다. 왜 그는 앨리스를 19살이나 먹게 했을까? 19살, 그 당시 나는 더 이상 원더랜드를 생각하지 않았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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