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카족들은 정확한 자신의 모습을 찍기 원하는 것이 아니라 '셀카만의 이미지'를 즐기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확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모습을 가장 예쁘게 변형해서 담고 싶은 '나르시시즘적 욕망의 구현'이다. 그들은 이미 테크놀로지 위에 올라탄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시행착오로 폰카의 단점을 파악하고 때론 그 변형을 극대화한다. 이른바 '얼짱 각도'가 그것이다. 45-15도(팔을 쭉 뻗어 옆으로 45도, 위로 15도 정도 위치)로 사진을 찍으면 눈은 크게, 얼굴은 갸름하게 나온다는 셀카 촬영의 이 고전 기법은 셀카족들이 오랜 경험을 공유해 터득한 '폰카 왜곡기술 활용법'이다. 내가 찍음에도, 나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 '가장 왜곡된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셀카는 '삶의 기록'이 아니라 '욕망의 기록'이다. 우리들의 낡은 앨범에 담긴 어린시절 사진들과 달리, 셀카에는 배경이 없다. 내 삶의 중요한 순간임을 알아챌 어떠한 실마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그리고 내 옆에서 나와 얼굴을 같이 비비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만이 포착된다.
: 한겨레21,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글을 읽다가. 사람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건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지만 2000년대를 살아가는 인간들만큼 몸서리처지게 이기적인 족속의 등장은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그리고 나'가 아니라 그냥 '나'로 사니까.
'중독자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난 김에 또 하나의 오프닝 (0) | 2009.08.16 |
---|---|
내가 좋아하는 오프닝 (0) | 2009.08.15 |
마이크로크레디트 (0) | 2009.08.13 |
간이역 여행 (0) | 2009.08.13 |
소크라테스는 말만 했다 (0) | 2009.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