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노트

김구라는 한명으로 족하다

guno 2012. 10. 28. 14:41

 

 

김구라가 처음 지상파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뭐 저런.." 이라고 욕지기가 튀어나왔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선 다른 누구도 쉽게 꺼내지 못한 저급한 관심을 아무렇지 않게 드러냄으로써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다. 돈 좀 있다면서요? 아참 이 사람 여자가 좋아할 스타일이야~ 가방끈이 긴 사람이 좋더라. 집이 좀 되죠? .. 사실 이런 무례한 질문과 대화를 김구라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싶었다. 처음의 거부감은 얕아지고 어느새 김구라만의 저급한 화술에 웃을 수 있게 됐는데.. 이젠 텔레비전만 켜면 모든 mc들이 김구라여서 지겨울 지경이다. 김구라가 없는 황금어장인데 윤종신을 비롯한 다른 mc들이 알아서 김구라 역을 한다. 김구라를 벤치마킹하다 못해 대한민국 미디어는 김구라 스타일의 저급한 화술로 넘쳐난다. 프로그램과 진행자가 다르면 대화도 달라야 하건만 죄다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주고받고 상대방의 학력이나 재력, 육체적인 콤플렉스를 아무렇지 않게 지적질한다. 그에 대해 불편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꽁생원처럼 군다고 또 손가락질한다. 차별화된 전략 없이 무조건 따라하려다보니 전체적인 토크의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온라인 오프라인 모든 미디어들이 여신미모, 재벌결혼, 반전학력 등을 언급하며 부끄러움도 모르고 저급 막장으로 치달아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김구라만이 지금처럼은 안된다 하고 자기반성을 하고 있는 것도 웃긴다. 

 

예전에 '타블로 논란'이 막 점화되었을 당시 한 후배가 술자리에서 "타블로 집안의 거짓말은 너무 끔찍하다"며 느닷없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자신이 안티 타블로 그룹에 속하게 된 이유와 근거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후배를 보면서 좀 의아했었다. 기자라는 녀석이 시간도 많은가 보네. 게다가 그 후배는 나름 배울만큼 배우고 생각 좀 있다고 알던 녀석이어서 더욱 놀라웠다. 타블로를 너무 좋아했던 나머지 누군가 타블로에 대한 나쁜 말을 전해서 실망한 걸까? 그것도 아니었다. 우연히 타블로 안티 카페에 들어가 이것저것 내용을 살펴보다 그 내용에 너무 화가 나고 분노해서 열혈 타블로 안티가 된 것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크기에 비해 이유는 너무 단순했다. 도대체 타블로 엄마가 20년 전에 했다는 거짓말은 또 어디서 찾아낸 걸까? 그 술자리 이후 타블로 논란은 점점 커져서 온국민이 알만한 일이 되었고, 원하지 않아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논란을 접한 나로서는 한가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타블로의 이력을 이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집요하게 파고드는 네티즌 수사대의 집념 혹은 집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는. 네티즌이 결과적으로 옳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와 별도로 나는 타블로의 거짓말(?)보다는 타인의 삶에 지나치게 파고드는 그들이 더 무서웠다. 그리고 그것을 정의라고 포장하는 그들의 무지와 무례에 기가막혔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프라이버시의 침해는 육체적 상해만 남기지 않을 뿐이지 강간과 다름없는데도. 

 

어느 정도의 무례는 서로의 벽을 허물고 친밀감을 더하는 계기가 될수 있을테지만 적어도 내가 쏜 화살이 꽂힐 그곳이 나와 다름 없는 한 사람의 가슴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우리는 좀더 신중해져야 하지 않을까.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잊지않고 다른 사람의 선동에 쉽게 부화뇌동하여 이성을 저당잡히지 않으며 부끄러움을 알고 잘못을 사과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김구라여서야 어떻게 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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