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남자, 아빠가 되다
■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 (2001년) ;
로얄 테넌바움, 그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다. 제법 돈도 벌어서 35살이 되던 해에는 고급주택가에 있는 빌라도 한채 구입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다. 세 아이와 아내에게 빌라를 내어주고 따로 살게 되었지만 가끔씩 아이들을 보러가곤 했다. 정겨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의 세 아이들은 세상이 천재라 부르는 아이들이었다. 맏아들 채스는 국제금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초등학생 시절에 이미 스스로 백만장자가 되었고, 입양딸 마고는 어려서 극작가로 데뷔하더니 15살에는 브레이버만 그란트상을 수상했다. 셋째아들 리치는 주니어 테니스 챔피언으로 17살에 프로로 전향해서 3년 연속 US 오픈타이틀을 획득했다. 지성은 물론이고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아빠보단 훨씬 성숙한 아이들의 아빠로 살기에 로얄은 아직 철부지같아서 일일이 옳고 그름을 따지는 채스는 재미없어서 피하고 입양딸 마고는 안 친해서 피하다보니 막내 리치만 불러내 노는 일이 잦았다. 그러던 어느날 맏아들 채스의 금고에서 돈을 꺼내 쓴 것이 발각되어 아들에게 고소고발 당하고 잠시 감옥에 다녀와 변호사 자격도 박탈당했다.
가족들은 더이상 그를 만나고 싶지않다며 로얄을 밀어냈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원망하진 않았다. 누구나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니까. 로얄은 전재산을 은행에 넣고 팔래스호텔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다양하고 완벽한 호텔 서비스는 가족과 친구의 빈자리를 메꿔줄뿐 아니라 그가 해야할 잡다한 일들까지 대행해줬다. 쓸쓸함을 느낄 때면 그 덕분에 삶이 얼마나 심플하고 안락해졌는가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했다. 그렇게 팔래스호텔에서 생활한지 22년, 통장 잔고는 바닥이 드러났고 몇달째 밀린 숙박비 때문에 호텔에서는 체크아웃하라고 난리였다. 로얄은 아주 오랫만에 아내와의 별거생활을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로얄의 컴백홈 프로젝트는 위암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시작됐다. 우연인듯 운명인듯 같은 시기 맏아들 채스가 집을 고치는 중이라며 두 쌍둥이 아들을 데리고 엄마의 집으로 들어왔고,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고 있던 입양딸 마고 또한 짐을 챙겨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로얄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중이던 리치 또한 집으로 돌아오면서 22년만에 온가족이 한집에 모이게 됐다. 정겨운 만남은 아니었다. 돈좀 꺼내썼다고 고소고발 당해 변호사 자격까지 박탈당한 것은 자신인데 아들 채스는 여전히 눈에 쌍심지를 켰고, 고아인 아이를 데려다 멀쩡하게 키워줬건만 입양딸 마고는 시큰둥한 얼굴을 하고 포옹조차 해주지 않았다. 마음 착한 리치만이 위암에 걸렸다는 아빠에게 자신의 방을 내어주고 다락으로 올라갔다.
22년이란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천재였던 아이들은 어느새 비범한 아웃사이더가 되어있었다. 채스는 그저그런 사업가가 되었는데 몇년전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은 뒤에는 안전강박증에 걸려 하루에도 몇번씩 호루라기를 불며 대피소동을 벌였다. 입양딸 마고는 몇년째 글 한줄 안쓰고 있는데 가족들 몰래 담배를 피우며 리치의 친구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 사랑스런 리치는 무슨 일인지 어느날 테니스경기 도중 라켓을 집어던지고 경기를 포기하더니 선수생활을 접고 유람선을 전세내어 몇년째 바다를 떠돌다 이제야 집으로 돌아왔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으로 변한 것이겠지만 모두들 너무 심각하고 재미없고 우울한 것이 로얄에겐 불만이었다. 자신을 무시하고 없는 사람인양 대하는 가족들을 관찰하며 다시 한번 가족의 일원이 되어보려는 로얄에게 두 손자는 눈높이가 딱 맞는 친구가 되었다. 지나가는 차에 물풍선을 던지고 구멍가게에서 우유를 훔치고 쓰레기수거차에 매달려 신나게 달렸다. 채스가 알고 펄쩍펄쩍 날뛰며 로얄에게 무책임하다고 소리를 질러도 상관하지 않았다. 인생은 모헙이니까. 로얄은 살면서 처음으로 싸우고 부딪치더라도 그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낀다. 어차피 처음부터 폼나는 아빠였던 적이 없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완벽했던 천재 아이들이 이제야 잔소리가 필요한 자식들로 느껴지는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런 와중에 리치가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병원에 모인 가족들. 그들은 너무나 슬프지만 리치가 은퇴한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자살을 시도한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한 리치가 로얄을 찾아온다. 조언이 필요하다며. 생애처음 아빠 노릇을 해야 한다는데 바짝 긴장한 로얄. 리치가 말한다. 아주 오랫동안 마고를 사랑해왔다고.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로얄이 말한다. 어떻게 해야할지 말해주고 싶지만 솔직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난 아직 네 아빠지? 로얄에게 기대는 리치. 로얄은 마고를 찾아간다. 처음으로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를 한다. 한번도 편한적 없던 입양딸 마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던 로얄은 그녀와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제야 마고가 언제나 그의 딸이길 바랬다는 걸 알게된다. 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집 입양딸이라는 말이 그녀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도. 위기에 처한 손자들을 구한 일로 화해하게된 채스에겐 아버지와 놀고 싶었던 어린시절, 늘 리치만 데리고 놀러나가는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슴깊이 새겨져있다는 것도 알게된다. 굳이 멋진 아빠일 필요는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웃고 울고 화내고 절망하고 이겨내고 성공하는 걸 지켜보면서 서로를 알아가야 했다. 로얄의 컴백홈 프로젝트는 로얄식 아빠가 되는 것으로 완성됐다. 로얄과 채스, 두 손자가 함께 달리는 쓰레기수거차에 매달려 화창하게 웃는다. 리치의 사랑을 알게된 마고는 자신의 마음 또한 같다는 걸 고백하고 따뜻하게 포옹한다. 몇년 뒤 로얄은 죽고 온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례식이 치러진다. 그가 직접 지은 묘비명이 새겨졌다. "가라앉은 배에서 가족을 구하고 비극적으로 죽다."
웨스 앤더슨 식의 이색 코미디 영화. 개성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을 주지만 가볍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결코 외롭다거나 슬프다거나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인물들이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시니컬한 대사만 툭툭 내던진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은듯 행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바라봐줄 누군가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들의 엉뚱함은 지독한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는 방어행위이고 이 영화 또한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만들지 못하는 웨스 앤더슨의 애틋한 모놀로그라는.
■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 The Life Aquatic with Steve Zissou (2004년) ;
스티브 지소, 그는 해양생물학자 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도서관과 사우나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벨라폰테라는 배를 타고 바다속을 탐험하는데, 지금까지 12편의 해양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어린이 해양학자를 꿈꾸는 소년들을 위해 지소협회도 운영하고 있다.
가장 용감하고 가장 잘나가는 바다 탐험가이자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지소의 자부심에 금이가는 일이 발생하는데, 12번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생긴 사고가 원인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동료였던 수석잠수부 에스테반과 함께 바다속에 들어가 촬영을 하던 중 재규어 상어(표범무늬 상어)를 발견하고 놀란 것도 잠시, 에스테반이 재규어 상어에게 먹히고 지소는 카메라를 잃어버린 뒤 겨우 구조되어 다큐멘터리가 미완성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촬영분이 없는 재규어 상어에 대해 지소의 상상이라는둥 거짓말이라는둥 수군댔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소는 재규어 상어를 찾아 친구의 복수를 하고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명예회복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13번째 다큐를 제작하기 위한 모금 파티를 벌이던 중 한 청년이 지소에게 다가온다. 네드 플림턴이라고 이름을 밝힌 청년은 어머니가 두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죽기 전에 지소가 친아버지라 해서 찾아왔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바다 탐험에만 몰두해온 지소에게 아들이라는 이색적인 존재의 등장은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어서 당분간 곁에 둬야겠다고 생각한다. 지소는 네드에게 두달간의 다큐 촬영에 합류할 것을 제안하고, 네드 또한 지소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러겠다고 한다.
영화는 지소와 네드가 바다 탐험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사사건건 부딪치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심각하지는 않다. 이 영화는 매우 사랑스러운 코미디다. 철없는 지소는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자신을 취재하려고 탐험에 합류한 여기자가 네드에게 관심갖는 걸 질투해서 유치하게 방해를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부한 악의가 없어서 마냥 순진한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느껴진다.
지소가 오래전부터 아들의 존재를 알고있었다는 걸 알고 네드가 묻는다. 왜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지소가 대답한다. "난 아버지란 존재를 증오하거든. 되고싶은 생각도 없었고." 네드는 지소에게 아들로 인정해달라 사정하지 않고, 지소는 친아들인지도 확실하지 않다며 발을 빼지만 그러면서도 네드에게 '킹슬리 지소'라는 새이름을 지어준다. 네드가 어려서부터 지소의 팬이었으며 지소에게 팬레터를 보낸 적도 있다며 그에게 받았던 답장을 보여준다. 지소가 답장한 것이 분명한 편지에는 그러나 '대필시킨 것이라 편지를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음'이라는 의아한 추신도 달려있다. 나중에야 지소가 네드의 팬레터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면서 지소에게 애정이 없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몰랐다는게 드러난다. 이 영화의 드라마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두 남자의 신경전이 애정으로 발전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지소가 아들이란 존재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거다. 부모가 되는건 부모노릇을 터득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공유하며 추억을 쌓는 거라는 것도.
계속되는 사고 때문에 탐험을 그만두려고 할때 네드는 지소에게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며 정찰을 나갔다가 사고로 죽게된다. 배 위에서 조촐한 장례식을 치루고 네드의 관이 바닷물에 풍덩 잠긴 그날밤 운명처럼 재규어 상어가 추적기에 포착된다. 모든 선원들과 함께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 깊숙이 들어간 지소, 그곳에서 지금까지 지소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고 믿지 않았던 재규어 상어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낸다. 눈시울이 뜨거워진 지소가 말한다. "저 놈이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군."
아주 오래전에 <무지개물고기>라는 그림책을 본적이 있다. 색색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물고기 그림이 인상깊어서 지금도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는데 정작 그림책 내용은 기억나질 않는다. 내게는 이 영화도 그럴것 같다. 시간이 지나 내용을 잊을지언정 한권의 그림책처럼 아름다운 영상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이라는 도화지 위에 웨스 앤더슨의 크레용이 더해져 영화는 더욱 사랑스럽고 신비하고 완벽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의 눈부신 해변을 배경으로 크레용 해마, 설탕게, 전기해파리, 형광돔, 재규어 상어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생물의 등장과 누구나 한번쯤 꿈꾸었을법한 완벽한 구조의 벨라폰테, 귀여운 돌고래 정찰대, 눈이 즐거워지는 의상과 소품들의 미장센이 기가 막힌다. 어려서부터 해양생물, 해저탐사에 관한 책을 너무나 좋아했다는 웨스 앤더슨의 상상력이 구현해낸 만화경같은 영화.
■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The Fantastic Mr Fox (2009년) ;
미스터 폭스, 그는 사냥솜씨 좋은 야생여우였으나 애인의 임신 사실을 알고 야생을 버리고 결혼을 택한다. 12년째 지역신문 칼럼니스트로 일하며 사랑하는 아내와 이상하게 삐딱한 사춘기 아들과 지내는 동굴생활은 풍족하지 않지만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야성적인 여우로서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나날을 보내던 폭스씨는 40살이 되자 동굴생활을 접고 전망좋은 나무집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한다. 괜찮은 나무집을 발견하고 이사를 하는데, 이사한 나무집 건너편으로 보이는 보기스, 번스, 빈 세 농장이 그의 야생본능을 일깨운다. 보기스는 닭농장, 번스는 오리와 거위농장, 빈은 칠면조와 사과농장인데 각각의 농장이 어마어마한 규모와 엄중보안을 자랑하는 것도 폭스씨의 구미를 당긴다.
아내 몰래 은밀하게 사냥계획을 세우는 폭스씨. 수리공인 카일리와 처남이 폐렴에 걸려 잠시 떠맡게된 처조카 크리스토퍼슨을 자신의 계획에 투입한다. 크리스토퍼슨으로 말하자면 아들 애쉬와 같은 또래지만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며 여자아이에게 인기가 있을뿐 아니라 매우 날렵하고 센스가 있어서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아빠 일행의 뒤를 밟고 몰래 따라와 자기도 끼워주면 안되냐고 묻는 아들 애쉬로 말하자면...그 애는 좀 다르다. 학창시절부터 우월한 체격조건과 남다른 운동능력을 자랑했던 폭스씨의 아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게 체격이 작고 왜소하며 운동신경은 절망적이고 보자기를 목에 두르고 양말을 바지 위에 신는 등의 괴상한 패션감각을 가졌고 쉽게 화를 내고 걸핏하면 침을 뱉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아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폭스씨는 애쉬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카일리,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흥미진진한 사냥을 시작한다. 그러나 한밤의 모험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아내에게 들켜 혼쭐이 난데다 그 와중에 크리스토퍼슨은 끼워주면서 자신은 끼워주지 않았다며 아들 애쉬의 서러움에 복받친 투정까지 들어야해서 머리가 복잡한데 설상가상 농장 주인들의 반격으로 나무집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날라오는 총알과 공격적인 포크레인의 위협속에 폭스씨의 가족은 땅굴을 파고 도망을 시작한다.
몇날며칠 계속되는 포크레인 공격에 땅속의 난민이 되어 모두 지칠대로 지친 폭스씨의 가족들. 아내가 묻는다. 과연 이런 결과를 감내할만큼 당신의 사냥은 중요했냐고. 그리고 폭스씨는 말한다. 나는 야생동물이잖아. 내가 여전히 야생동물이라는 걸 확인해야 했어. 아내가 한숨을 쉬며 돌아서고, 폭스씨는 토라져 입을 다문 아들에게 다가간다. "애쉬야 네가 그렇게 화낼줄 알았다면 크리스토퍼슨을 데려가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걔가 워낙 뛰어나잖니. 너도 알겠지만 운동신경 하나는 정말 끝내주니까." 말을 하면 할수록 아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아빠를 보며 애쉬는 귀를 틀어막는다. 땅속의 도피생활은 여러번 위기에 처하지만 그때마다 번뜩이는 재치로 가족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폭스씨. 급기야 숲 전체로 번진 농장주들의 대규모 공격 때문에 땅속으로 대피한 온갖 동물들의 지도자가 된다. 땅속에 모인 동물 저항세력과 땅위에서 숲 전체를 토벌하며 여우사냥에 나선 거대자본 농장주들의 싸움이 본격화된다. 숲속 동물들의 생명과 안전을 걸고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의 와중 폭스씨의 가족은 잠시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때 엄마가 아들 애쉬에게 해주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애쉬야 엄마는 네 기분을 다 이해한단다. 우리는 모두 다르지. 그런데 말이야. 모두 다르다는 게 정말 판타스틱한 거란다."
위기상황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애쉬는 전투중 빼앗긴 아빠의 꼬리를 되찾기 위해 크리스토퍼슨과 함께 기습 침투를 감행하고, 결국 크리스토퍼슨이 인질로 잡힌 가운데 애쉬만 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크리스토퍼슨을 구하기 위해 항복을 결심하는 폭스씨, 항복하면 그에겐 죽음뿐이겠지만 이젠 방법이 없다. 비장한 마음으로 떠나는 그가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네 엄마가 임신했다고 말했을 때 과연 뱃속에 있는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궁금했단다. 애쉬, 그게 너라서 아빠는 기쁘다. 네가 잘못한건 없어. 그러니 어깨를 펴렴. 이건 모두 아빠의 잘못이란다."
생각지 못한 사고가 일어나 항복의 기회는 날아갔지만 폭스씨는 다시한번 땅속 동물들에게 힘을 모으자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종에 따라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태어난 야생동물입니다. 우리가 가진 본성과 재능, 우리 사이의 차이점은 오히려 이 상황을 헤쳐나갈 작은 희망이 될수 있어요!" 땅속 동물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마지막 전투를 위한 각자의 역할과 임무를 맡는다. 긴장되는 순간, 휘파람과 함께 서부영화 음악이 흘러나오고 애니메이션답지 않게 매우 스펙타클한 전투 장면이 이어진다. 전투의 클라이막스, 폭스씨와 애쉬가 힘을 합쳐 크리스토퍼슨을 구출해서 나오다가 농장주들에게 포위되는데 이때 애쉬가 번뜩이는 재치와 날렵한 몸놀림으로 반격을 해서 탈출에 성공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아들의 멋진 모습에 놀란 폭스씨가 말한다. "애쉬야 넌 정말 순수하고 미친 야생동물답구나!" 애쉬가 대답한다. "uh-huh!"
로알드 달의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를 원작으로 한 웨스 앤더슨의 스탑모션애니메이션. CG애니메이션이 아니라서 질감이 매우 사실적인데 폭스씨의 코듀로이 의상은 실제로 웨스 앤더슨이 즐겨입는 자켓의 옷감을 잘라다 만든 것이라고 한다. 초호화 배우들의 더빙도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인데, 실감나는 더빙을 위해 배우들이 다같이 모여 동시녹음을 한데다 강변과 지하터널을 오가며 녹음을 해서 영화와 같은 장소에서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고 한다. 보통사람의 1/20 크기로 만들어진 인형으로 웨스 앤더슨이 보여주는 영화가 어떤 모습인지는 설명을 듣기보다 실제로 봐야만 한다는 거. 나라와 인종과 성별과 연령이 달라도 이 영화는 분명 모든 사람들에게 판타스틱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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