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자연은 악마의 교회, 안티크라이스트

guno 2010. 2. 23. 09:08

 

안티크라이스트 Antichrist (2009년, 덴마크) ; 라스 폰 트리에 감독, 웰렘 데포, 샬롯 갱스브르 주연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1956년생으로 브레이킹 더 웨이브, 백치들, 어둠속의 댄서, 도그빌 등의 영화와 TV드라마 킹덤 시리즈을 연출, 영화판 킹덤까지 제작한 덴마크의 대표적인 감독이다. 그는 러시아의 영상시인으로 불리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고 했는데, 감독이 신경써서 촬영한 테가 많이 나는 아름다운 영상이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가 시작되고 3분간 화면이 슬로우로 진행되는데, 우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멋지게 연출했다.

2009년 62회 칸영화제에 소개된 이 영화는 그의 전작들과 달리 엄청난 혹평을 받았으나 나로 말하면 그의 영화중 이 작품이 가장 흥미로웠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여성혐오증으로 가득한 영화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감독이 관객에게 자신의 편견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불쾌한 영화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압박한 공포와 두려움, 의기소침함은 누구로부터 강요당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감독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공감의 눈빛을 나눈 기분이다. 이 영화는 과감한 노출과 적나라한 정사신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보고 난 뒤 내게 남은 것은 두려움이었다. 막연히 생각하던 것을 누군가 그렇다, 하고 말해주었을 때의 오싹함이랄까. 내속에 있는 잔인한 무엇을 들킨 기분이었다.

 

난 가끔 여자들에게서 몸서리쳐지도록 잔인한 무엇을 본다. 이제 갓 열살이 넘었는데 자신의 아름다움이 무기가 된다는 걸 알아버린 오만한 조카에게서, 세상에 자신만한 현모양처는 없다고 굳게 믿고 있는 내 엄마에게서 남자한테는 느껴본적 없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르는 섬찟함, 상대의 영혼을 죽이는 폭력성이 또아리 틀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난 믿는다. 여자는 모두 가슴에 악마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눈물과 연약함으로, 아름다움으로 치장해 다른 사람들은 물론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 데 능수능란하다고. 내 안의 무엇이 나를 두렵게 하듯이 그들의 무엇이 나는 두렵다. 

안티크라이스트란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 가짜 그리스도이며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계 종말 직전에 나타날 악마를 일컫는다. 영어제목에서 T가 여성을 뜻하는 ♀로 표시되어있는 건 적그리스도가 여자임을 나타낸다. 자연은 악마의 교회, 여자의 자연(nature, 자연 또는 본능)은 악마라는 말. 난 이게 너무 이해되고 공감간다. 앗, 그렇다고 내가 기독교적인 사고를 갖고 있거나 그것을 믿거나 긍정한다고 오해하진 말자. 나는 기독교의 오만한 차별주의와 폭력적인 마녀사냥을 혐오하는 인간으로서 아주 순수하게 여자의 본성에 대한 입장에서만 감독과 공감한다. 여자 안에 악마가 들어있다고 해서 그것이 뿌리뽑거나 죽여야할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바로보고 인정해야 할 무엇이라고 생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