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guno 2012. 8. 4. 13:45

 

 

"모모의 성장기, 우리를 가르치는 것은 늘 사람이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은 작가 로맹 가리의 또 다른 필명이다. 그러나 로맹 가리가 1980년 권총 자살을 한 뒤 유서가 발견되기 전까지 아무도 그가 에밀 아자르라는 사실을 몰랐다. 작가 로맹 가리에게 쏟아지는 지독한 혹평에 맞서 또 하나의 자아를 내세운 그는 그것도 모르고 에밀 아자르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을 보고 우월감을 느끼진 못했던것 같다. 결국 자살을 선택했으니까. 로맹 가리가 죽을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던 에밀 아자르의 정체, 덕분에 한 사람이 일생에 단 한 번만 수상할 있다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로맹 가리는 두 번 수상했다. 로맹 가리로 한 번, 에밀 아자르로 또 한 번.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듣고 이 책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빈곤한 동네의 한켠에 부모가 없거나 가난한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가 있고, 아이들 중에는 모모(모하메드)가 있으며 모모에게 늘 대화친구가 되어주는 하밀 할아버지가 있다. 가난하지만 다정한, 잔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이들의 삶을 통해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 죽기 전까지 백 퍼센트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다. 인생에는 원래 두려움이 붙어다니게 마련이니까.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그리곤 이렇게 덧붙였다.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는 말처럼 얄팍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하밀 할아버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메카에까지 다녀왔다.

 

그녀는 정해진 법 때문에 자기 뜻대로 죽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할 적마다 울음을 터뜨렸다. 법이란 지켜야 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밀할아버지는 인정이란, 인생이라는 커다란 책 속의 쉼표에 불과하다고 말하는데, 나는 노인네가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소리에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로자 아줌마가 유태인의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볼 때면 인정은 쉼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쉼표가 아니라, 차라리 인생 전체를 담은 커다란 책 같았고, 나는 그 책을 보고 싶지 않았다.

 

로자 아줌마가 개였다면, 진작에 사람들이 안락사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게보다 개에게 더 친절한 탓에 사람이 고통 없이 죽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

 

유세프 카디르 씨의 의아해하는 얼굴에 간간히 경련이 스쳐갔다. “부인 저는 유태인은 아니지만 학대를 받았습니다. 학대가 당신네 유태인의 독점물은 아닙니다, 부인. 다른 사람들도 유태인들처럼 학대받을 권리가 있는 겁니다.”

 

카츠 선생님의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병원에 갔다 하면 아무리 아파서 죽을 지경이라 해도 안락사를 시켜주지 않고 살덩이가 아직 썩지 않아 주사바늘 찌를 틈만 있으면 언제까지고 억지로 살아 있게 한다는 것을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최후의 결정은 의학이 하는 것이고, 의학은 하느님의 의지와 끝까지 싸우려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