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이영도, 눈물을 마시는 새

guno 2012. 8. 4. 14:47

 

 

나의 십대는 도스토예프스끼에게 매혹된 시기였다. 왜 그와 같은 시대에 태어나지 못했는가 아쉬워했고, 그를 마주보며 얘기할 수 있기를 꿈꿨다. 그의 언어 하나하나가 이미지가 되어 걸레 빤 물처럼 더럽게 흐린 하늘과 시궁창 같은 냄새로 가득한 뒷골목,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인간들이 내 곁에 살아나 숨쉬었다. 그리고 한동안 비어있던 내 옆을 채웠던 게 이영도다. <드래곤라자>를 시작으로 <퓨처워커>, <폴라리스 랩소디>, <오버 더 호라이즌>, <눈물을 마시는 새>, <피를 마시는 새> 시리즈까지. 책이야 여러 권을 읽고 그만큼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지만 나에게 성큼 다가와 얼굴을 내미는 작가는 이영도가 두번째였다. 그가 오랫동안 책을 내지 않는 관계로 그를 만난지도 어언 10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지난 달, 문자의 갈증에 시달리다 오랜만에 그의 책을 다시 펼쳤다. 두툼한 양장본이라 더욱 먹음직스러운 <눈물을 마시는 새>.  

 

 

네 마리의 형제 새가 있소. 네 형제의 식성은 모두 달랐소.

물을 마시는 새와 피를 마시는 새, 독을 마시는 새, 그리고 눈물을 마시는 새가 있었소.

그중 가장 오래 사는 것은 피를 마시는 새요.

누구도 몸밖으로 내놓고 싶지 않은 귀중한 것을 마시니까.

하지만 그 피비린내 때문에 아무도 가까이 가지 않아.

가장 빨리 죽는 새는 눈물을 마시는 새요.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하더군.

 

목차

“셋이 하나를 상대한다”

1.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2. 숙원을 추구하는 레콘

3. 불을 다루는 도깨비

4. 왕을 찾아 헤매는 인간

 

4가지 선민종족

나가 : 뱀, 변온동물, 발자국 없는 여신에게서 이름을 받는다. 물의 힘, 심장탑

인간 : 킴, 어디에도 없는 신에게서 나늬를 받는다. 바람의 힘, 하인샤 대사원

레콘 : 닭, 모든 이보다 낮은 여신에게서 무기를 받는다. 땅의 힘, 최후의 대장간

도깨비 : 자신을 죽이는 신에게 불의 힘을 받는다. 불의 힘, 즈믄누리

 

하늘치 : 하늘을 나는 거대한 생선. 스스로 완전성을 얻어 빛이 되어 사라진 최초의 종족이 남긴 유물. 그들이 모시던 ‘자신을 보지 못하는 신’은 빛의 힘을 가졌었다.

 

두억시니 : 빛으로 사라진 최초의 종족이 남긴 잔여물.

 

이웃을 바라볼 창문을 값진 주렴으로 덮고 어두운 방안에서 자신을 잃고 찾아 헤매니 이를 지혜로움이라 불렀더라, 저 오만한 두억시니..

 

술이란 차가운 불, 거기에 달을 담아 마신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면, 죽음을 강요할 수 없듯 삶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남을 지배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에게 지배당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가진 사람이였어요”

 

황혼의 빛이 따스해 보이더라도 현명한 자라면 그 속에 배어 있는 냉기를 느낄 수 있을 거요. 차가운 밤을 준비하시오.

 

바람의 눈물이 배어날 것 같은 습기 찬 공기

 

글쎄요. 봄은 새싹 속에 있습니까? 새싹 속엔 분명 봄이 있습니다만.

 

열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죽인다면, 그건 열 명의 살인자를 만드는 일이지.

 

물은 열을 흡수하지. 바꿔 말하면 물이 열을 보관한다는 의미도 되오. 사막이 왜 밤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추운지 아시오? 사막에는 물이 없소. 그래서 사막은 낮의 열을 보관해두지 못하기 때문에 밤에 그렇게 추운 거요. 대체적으로 더운 지방은 물이 많은 곳이요. 메마른 곳은 춥지.

 

내 자존심과 내 생명과 내 열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의탁하는 일은 없을 거요.

 

지나치게 많은 청춘이 죽었다. 탐스러운 열매를 보장할 아름다운 꽃들이 참혹한 폭우에 쓰러졌다.

 

항복하면 어떤 이점이 있지? - 항복한 것을 후회할 권리를 얻으실 겁니다.

 

승패는 우애 깊은 쌍둥이라 승전의 밤은 당연하게도 패전의 밤이기도 하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생각을 존중할 의무는 없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배신하는 일

 

재미를 아는 자는 힘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포옹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가까운 이별이다.

 

비는 하늘이 땅에게 건네는 대화다.

 

꿈에 그리던 여인을 겨우 안았는데 현실의 악취를 맡게된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