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더 톨맨 vs. 케빈에 대하여

guno 2012. 8. 13. 03:43

 

 

 

 

"내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모르겠는 엄마의 두려움" vs. "부모를 선택해서 세상에 나올 수 없다는 아이의 불만"

 

여자라고 해서 자신의 뱃속에서 천사만 나올거라고 꿈꾸진 않는다. 멋진 아이가 나오길 바라지만 혹시나 나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닮은 아이가 나오면 어쩌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아이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내가 무엇을 계획하고 준비하더라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진 확실한게 하나도 없고, 어떤 아이가 태어나는가에 따라 내가 어떤 엄마가 될지도 결정되기 때문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이 원초적인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어려서부터 남과 다른 아이, 비뚤어진 사고와 잔인한 행동의 이면에 다정한 겉모습으로 자신을 포장하려는 아들, 사이코패스임이 분명한 아들을 보면서 엄마는 매순간 절망하고 또 매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엄마라며 추스른다. 케빈의 미소와 거짓말에 속지 않는 것은 엄마뿐이다. 그래서 남편은 말한다. "케빈은 애일 뿐이야. 여보 당신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구."

결국 16살 생일을 앞둔 어느날의 케빈은 아빠와 여동생을 죽인 뒤 학교로 가 체육관 문을 걸어잠근 뒤 친구들도 하나씩 죽인다. 아빠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활로 쏘아서... 모든 재산을 보상금으로 주고 작은 집에 혼자 살며 하루하루를 겨우겨우 연명하는 엄마. 그녀는 매일매일 생각한다. 나의 어떤 문제가 케빈을 그렇게 만든 걸까. 남편과 난 너무나 사랑해서 케빈을 가졌는데, 비오는날 맨발로 뛰는 나를 붙잡아 안고 어디 가지말고 내 옆에 있으라는 남편의 청혼은 달콤했는데,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걸까. 혹시 생각지도 못했던 임신에 당황해서 잠시 후회했던 마음이 지금의 캐빈을 만든 건 아닌지, 부른 배를 안고 힘들게 임신부 마사지를 배우러 다녔지만 다른 행복한 임신부들과 달리 무거운 몸을 주체하지 못해 엄마가 된다는 걸 기뻐하지 않았던 내 자신의 못된 마음이 캐빈을 그렇게 만든 건가... 다른 엄마들보다 다정하지 못한 내 성격 때문에? 숨막히도록 반항하는 아들이었지만 어느날은 가슴에 파고들며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적도 있는데. 왜 케빈은 계속 그렇게 따뜻한 아들이 되어주지 않았을까. 내 무엇이 아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엄마는 매달 월요일이면 교도소로 가 아들을 면회한다. 상처투성이 얼굴을 한 아들이 왠지 안쓰러워서였을까.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응시하기만 하는 면회시간에 엄마가 침묵을 깨고 말한다. "왜 그런 건지 말해줄래?" 변함없이 무표정하던 아들의 얼굴이 잠시, 아주 잠시 흔들린다. "글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닌거 같아." 왠지 눈물이 날것 같은 엄마는 아들에게 다가가 세게 포옹을 한다. 그리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와 아들의 방을 정리한다. 예전처럼 아들방 벽을 파랗게 칠하고 옷을 깨끗하게 빨아서 옷장을 채워넣는다. 언젠가 엄마에게 다시 돌아올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세상 모든 아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거다. 어떤 부모는 너무나 무능력해서, 어떤 부모는 너무 생각이 없어서 아이들은 부모가 무섭고 부끄럽고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 아이들은 사춘기를 보내며 이 절망과 타협하는 법을 배운다. 집에서 하숙하는 아저씨와의 사이에 아이를 낳은 17살의 언니, 사람들이 알면 안된다는 이유로 아이와 언니를 병원에 보내지 않는 엄마, 자기 여자와 아이를 보겠다며 거침없이 엄마를 때리는 아저씨, 아저씨를 상대로 신나게 싸우다가도 결국엔 히히덕거리고마는 술주정뱅이 엄마... 제니는 이 가족을, 이 마을을 떠나고 싶은, 누구와도 소통하기 싫어 말을 하지 않는 실어증 소녀다. 그런 그녀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간호사 줄리아. 그녀는 죽은 의사 남편을 대신해 동네 사람들을 살뜰하게 보살피는 사람으로 가끔씩 제니를 찾아와 새 노트를 주곤 한다.

제니가 사는 동네는 워싱턴 외각의 탄광마을. 폐광이 된 뒤로 동네는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앞날에 대한 희망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연명하느라 힘에 겨운 곳이다. 그런 이곳에 또 하나의 절망이 있다면 최근 몇년동안 수많은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동네 사람들은 '톨맨'이 아이들을 숲속으로 데려갔다며, '톨맨'이 데려간 아이는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톨맨'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는 '톨맨이야기'는 어느새 이 마을에서 전설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간호사 줄리아의 아들이 괴한에게 납치된다. 죽을힘을 다해 괴한을 쫓는 줄리아. 그리고 반전. 괴한에게 잡힌 아들을 찾았는데 그 아들은 괴한의 아들, 그동안 동네 아이들을 납치해온 건 줄이아였던 거다. 아들을 잃고 방황하던 어느 여인이 줄리아의 집에서 자기 아이를 발견하고 아이를 되찾아온 것이다. 다시 아이를 데려가려는 줄리아와 여인의 사투, 이때 제니가 나타난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던 제니, 뒤따라온 줄리아에게 아이를 넘겨주며 말한다. "나도 데려가줘요"

줄리아와 죽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살아서 '톨맨'이 된 남편은 무분별하게 방치된 아이들을 납치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아이를 보내주고 있었다. 돈은 받지 않는다. 다만 정의감과 책임감 때문에 인생을 걸고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줄리아가 체포된 가운데 '톨맨'에 의해 마지막으로 납치된 제니. 제니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새엄마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한다. 물론 이젠 말도 한다. 매일 아침 미술학원에 가는 길, 그녀는 매번 같은 길 같은 장소에서 잠시 머뭇거리곤 한다. 집으로, 엄마한테 돌아갈까.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건 지금이다. 그녀는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 인생속으로 걸어간다.

 

 

두 영화가 어쩜 이렇게 다르고 같은지. 두 명의 실력파 감독을 만난 것도 좋았지만 썸찟한 사이코패스 아들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 이즈라 밀러와 케이스39에서 등골이 오싹한 연기를 보여준 조델 퍼랜드의 제니 연기가 무척 좋았다. 특히 이즈라 밀러는 엄마에게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아들, 실은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더 엇나가기만 하다 결국 그 분노의 파도에 휩쓸려버리는 아들의 연기를 무척이나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두 영화를 보며 엄마와 자식에 대해, 뿌리와 가지처럼 연결되어 있지만 원인과 결과처럼 반드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닌 두 존재에 대해 곰곰히 생각한다. 벗어날 수 없는 그 질긴 운명에 대해.  

 

■ 더 톨맨 The Tall Man (2012년작) ; 파스칼 로지에 감독, 제시카 비엘, 조델 퍼랜드 주연 ■ 캐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년작) ; 린 램지 감독, 틸다 스윈튼, 이즈라 밀러 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