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죽음, 집착과 맹신, 에로스에 대한 작가의 관심사를 반영해 죽음과 관련된 역사 속 에피소드를 묶어놓은 책. 곳곳에 작가의 주관적 해설이 들어갔는데 너무나 일본적인, 지극히 일본인다운 사고방식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의 미학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첫 부분에 언급된 에로스 파트가 특히 재밌다.
"프랑스의 사상가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스는 죽음에 이르는 삶의 희열'이라고 했다. 사람은 사랑을 나눌 때마다 짧은 죽음을 경험한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랑을 나눌 때 절정의 극치에서 상대 안에 자신을 완전히 녹여버리고 싶어한다.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에로스도 그런 의미다.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에로스, 혹은 에로스에 한없이 가까운 죽음."
- 네크로필리아(necrophilia)는 시체 애호, 혹은 시간(屍姦)을 뜻한다. 네크로필리아의 네크로(necro)는 시체나 죽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nekros'에서 유래하고, 필리아(philia)는 사랑이나 친화성을 의미한다. 이 말을 시체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성벽의 의미로 처음 사용한 것은 프랑스의 애포럴 박사. 프랑스의 사드 후작 또한 <악덕의 번영>이란 책에서 딸을 너무나 사랑한 아빠가 묘지에서 딸의 시체를 꺼내 품에 안는 장면을 서술한바 있다. 실제 고대 이집트에서는 젊은 딸이 죽으면 시체가 흉하게 부패한 뒤에야 미라 제조업자에게 넘겨주었다고 한다. 누군가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능욕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백설공주 동화 또한 독사과를 먹고 죽어서 관 속에 누워있는 백설공주를 보고 왕자가 키스하는 장면에서 네크로필리아를 엿볼 수 있다.
: 1953년 12월, 성풍속잡지 <아마토리아>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국에는 이미 백년 전부터 시체의 몸을 파는 창관이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구춘정독서록>에는 시체의 부패를 막고 시판(屍班, 사후반점)을 제거하기 위한 안마법도 적혀있다. 그 기사에는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 중국 개항도시의 외국인 거주지역)에 있던 창관을 찾아간 어느 일본 남성의 수기가 실려있다. 그 가게의 벽 전체에는 파란 빛을 내는 야광주가 박혀 있고, 시체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인지 강한 방향제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방 한가운데에 커튼이 드리워진 침대가 놓여있고 거기에 열네댓 살 정도 되어보이는 한 소녀가 누워 있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 그 시체는 전혀 뻣뻣하지 않았다고 한다. 손님은 시체를 파손하지만 않으면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었다. 소녀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던 그 손님도 점점 흥분되어 시체의 다리를 벌리고 자신의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 시체를 이런저런 방향으로 눕히면서 마음껏 농락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자가 그렇게 자신을 흥분시킬 줄은 몰랐다는 말로 그 수기는 끝을 맺고 있다.
▶ 에밀리 브라우닝이 너무나 예쁘게 나왔던 <슬리핑 뷰티>
(2011년작,오스트레일리아) ;
약을 먹고 잠든채 상류층 남자들의 에로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여대생 루시가 겪게되는 이야기.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인간관계가 없는 현재, 따뜻한 인간의 접촉을 갈망하지만 누군가를 삶속으로 들여놓는데 두려움을 느끼는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
: 그리스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 마을에 엔디미온이라는 양치기 소년이 살고 있었다. 어느날 밤, 달의 여신 셀레네는 잠든 소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셀레네는 소년의 꿈속에 들어가 소년과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었다. 소년을 소유하고자 한 여신은 소년에게 이대로 살다가 추하게 늙을 것인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한 채 영원히 잠드는 것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는다. 엔디미온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유지한채 잠드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셀레나가 안내한 동굴에서 영원히 잠들게 된다. 희미한 달빛 아래 영원히 잠든 엔디미온. 여신 셀레네는 밤마다 동굴로 찾아가 그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했고, 그리하여 두 사람 사이에 5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 1957년 11월 16일, 미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발생한다. 위스콘신주 어느 마을의 농가를 수색하는 도중 집안 곳곳에서 조각난 시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 발이 묶인 목 없는 인간의 시체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고 시체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내장이 그 구멍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선반에는 인간의 머리가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두피를 고스란히 벗겨내 두피 속을 신문지로 채워 넣은 머리에는 머리카락도 그대로 붙어있고 그중에는 입술에 옅게 립스틱을 바른 것도 있었다. 인간의 머리 피부로 만든 램프 갓, 인간의 피부로 들씌운 상자 속에는 수십 개의 사람 코가 담겨 있고 또 다른 상자에는 소금을 뿌린 여자의 음부 몇 점이 들어 있었다. 식탁에는 수프 접시 대신 절반으로 잘린 두개골이 늘어서 있었고, 사람 뼈로 만든 포크와 나이프도 놓여 있었다. 천장에는 사람의 입술 여러 개가 실에 매달려 있었고, 행거에는 유방이 달린 변색된 피부 조끼가 걸려 있었다. 체포된 사람은 50대의 독신남 에드워드 게인. 그는 부모도 없이 농장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장에 대한 욕구가 강했던 그는 부모가 사망하자 오랜 꿈을 이루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묘지에서 파낸 여자 시체의 피부를 벗겨 몸에 걸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신문의 부고란을 보고 최근에 죽은 여성 사망자의 매장 기사를 확인한 다음 한밤중에 묘지를 파헤쳤다. 시체를 집으로 가져와 관계를 맺은 뒤 피부를 벗겨냈다. 얼굴을 벗겨내 마스크처럼 쓰고 유방을 꿰매 붙인 조끼를 걸치고 시체에서 도려된 음부를 자신의 페니스에 씌운채 어두운 밤 산책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묘지에서 파낸 시체만으로 만족할 수 없어 마침내 살인에까지 이르게 되는데 원래 지능이 낮은데다 정신감정에서도 법적 책임능력이 없다는 진단을 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됐다. 그곳에서 그는 직원이나 다른 환자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수였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그를 ‘에디’라는 애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 잘린 머리를 사랑한 여자라면 살로메를 들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으로 유명해진 살로메는 원래 신약성서에 등장한다. 헤로데 왕은 형수인 헤로디아를 왕비로 맞이했는데 세례 요한이 이것을 근친결혼이라 비난하자 그를 붙잡아 감옥에 넣었다. 헤로데는 요한을 처형하려고 했지만 그를 예언자로 신봉하는 군중들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포기했다. 마침 자신의 생일 축하연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자 헤로데 왕은 그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한다. 딸은 세례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달라고 한다. 왕은 자신이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어 요한의 목을 잘라 쟁반에 담아주었다. 딸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바쳤다. 그 딸이 바로 살로메다. 이러한 역사서의 내용을 각색한 것이 오스카 와일드. 그는 <살로메>란 책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이유는 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를 향해 복수를 칼날을 꽂은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살로메는 쟁반에 담긴 세례 요한의 머리에 키스를 하고 사랑을 고백하는 등 파멸에 빠진 팜므파탈로 묘사되었다.
: 14세기 포르투갈의 왕자 페드로는 왕비가 병으로 죽은 뒤 왕비의 시녀 이네스와 사랑에 빠져 몰래 결혼하여 아이를 낳는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네스가 자기가 낳은 자식을 왕비의 자식 대신 왕위에 올리려고 수작을 부리면서 신하들이 반발했고, 국왕 알폰소 4세에게 그것을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페드로 왕자가 집을 비운 사이 알폰소 국왕은 이네스에게 찾아간다. 그녀에게 조용히 물러날 것을 지시하지만 이네스는 왕자의 사랑을 받고 있고 왕의 손자를 낳은 자신을 어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반발한다. 동행한 신하들이 더 분노하여 소란스런 가운데 이때를 노린 무장병사들이 이네스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는다. 그리고 이네스의 시신은 서둘러 외진 곳에 묻힌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페드로 왕자는 사건의 전말을 듣고 슬픔에 빠지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부왕 알폰소 4세가 죽고 왕위에 오른 페드로 1세는 곧바로 이네스를 죽이자고 선동한 신하들에게 복수하기 시작했다. 성대한 연회를 열고 그곳에서 주동자들을 죽인 뒤 아직 살아있는 심장을 은쟁반에 담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심장을 물어뜯었다. 이듬해에는 왕족과 신하들이 보는 가운데 이네스의 관 뚜껑이 열렸다. 유골을 꺼내 의복을 입힌 뒤 왕좌에 앉히기까지 했다. 해골만 남은 얼굴에 베일을 씌우고 머리에 왕관을 얹었다. 페드로 왕은 “포르투갈의 왕비다!”라고 소리쳤고 신하들은 왕과 나란히 앉은 ‘죽은 왕비’를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성직자는 물론 중신들과 귀족들이 차례로 ‘죽은 왕비’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이후 왕비의 유골은 수도원으로 옮겨졌고, 페드로 왕이 죽은 뒤에는 이네스의 관과 마주보는 관에 안치되었다. 관에는 라틴어로 ‘우리는 이곳에서 세상의 종말을 기다린다’라는 글귀를 새겼는데 이는 마지막 심판의 날에 눈을 떠서 일어나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죽음을 초월한 사랑으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오르페우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하프를 멋지게 연주하는 청년으로 성장해 에우리디케라는 여자와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도 잠시, 에우리디케는 숲속에서 독사에게 물려 죽는다. 슬픔에 빠진 오르페우스는 저승으로 직접 찾아가 아내를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오르페우스의 애절한 하프 연주에 감동한 저승의 왕 하데스가 그의 청을 받아들여 에우리디케와 함께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허락한다. 단,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아내를 뒤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고요하고 험준한 길을 지나 마침내 지상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오르페우스는 긴장이 풀린 나머지 무심코 아내를 돌아본다. 그 순간 아내는 다시 저승으로 끌려가기 시작한다.
'책을 읽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0) | 2012.10.29 |
---|---|
장 지오노, 진정한 부 (0) | 2012.10.27 |
사색으로 가득한 책 한권, 그리스인 조르바 (0) | 2012.08.11 |
살인의 해석 vs. 데인저러스 메소드 (0) | 2012.08.08 |
도스토예프스끼, 노름꾼 (0) | 2012.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