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 (2012년) ; 조근현 감독, 강풀 원작
■ 내가 살인범이다 (2012년) ; 정병길 감독
역사는 있으나 반성도 인정도 단죄도 없는 대한민국에서 복수를 하자, 제발 복수 좀 하고 살자고 소리치는 두 영화를 봤다. 시골 농군의 서툰 총질처럼 어찌나 못났는지, 엉성하고 완성도 떨어지는 두 영화에 실망하며 "제대로 좀 만들어보지, 그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너무나 기다리던 내용이어서 못난 내 자식 같은 마음이 들었다. 짠했다. 진작에 이런 영화가 왜 안 나오나 하고 오래 기다렸었다. 그래서 못난 자식이지만 애달프다.
한국 영화에서 복수는 희귀한 소재다. 왜 그런지 분노도 없고 복수도 드물다. 복수란 신파의 영역, 주부 대상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주제였다. 폭력과 멜로에 치우친 영화계에서 홀대를 받아 애잔했던 복수였는데, 간만에 인간답게 분노하고 서툴지만 그래도 복수 좀 해보겠다는 두 영화가 어찌나 대견하고 반가운지 모르겠다. 게다가 두 영화감독이 같이 술먹고 대본을 썼는지 내용이 너무 닮았다. 복수를 다짐하고 피해자 그룹을 한데 모으는 주체가 있고, 그 주체는 돈이 많아 복수를 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경제적인 지원 뿐, 브레인이 없는 복수의 방법은 엉성하기만 하다. 슬픔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기에도 분노를 이해하기에도 내용은 부족하고 복수의 방법은 답답할 정도로 어리숙하다. <26년>에서 피해자들의 리더인 이경영이 광주사태 당시 진압군이었다는 내용은 괜찮은 발상인데 연출력이 부족해서 긴장감조차 주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었다. (늘 궁금했다. 당시 진압군이었던 그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내가 살인범이다>에서 박시후가 정재영과 한패라는 건 너무 일찍 관객에게 들켜버렸다. 그래도 재밌게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는데 감독이 자신의 반전에 지나치게 만족했는지 이후의 내용은 마무리 수준이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난 두 영화가 참 좋다. 너무 아마추어적인 작품이라 아쉬움이 크지만 그래도 복수하자고 소리치는 패기가 있어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앞뒤 안 가리고 주먹을 날리는 어린아이같은 순수와 울분이 있어서 좋다. 보다 많은 감독들이 더 많은 영화에서 분노를 담아 복수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26년>을 보고 아주 오래 전, 데모를 마치고 길가에 주저앉아 몸에서 나는 지독한 최루탄 냄새를 털어내고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이렇게 죽도록 싸우느니 총 한자루씩 사서 영삼이와 반역사적 행패를 일삼는 그놈들의 얼굴에 한방씩 총알을 날리는게 더 쉬울 거라고, 윤봉길 열사의 도시락 폭탄이야말로 가장 열정적이고 현실지향적인 우리들의 이정표가 아닌가 하고 농담처럼 말했던, 쉽게 분노하고 매우 순수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 함께 분노했던 그들은 또 어디에 있는 걸까.
'영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작을 뛰어넘는 우리영화, 화차 + 용의자X (0) | 2013.01.31 |
---|---|
기억상실이라는 시작, 언노운 Unknown 두편 (0) | 2013.01.31 |
예전엔 정말 멋졌던 미이케 다카시 (0) | 2013.01.19 |
아담 윈가드 감독, 호러블 웨이 투 다이 (0) | 2013.01.18 |
히스테리아, 여자와 바이브레이터 (0) | 2012.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