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나는, 지극히 평범한 범죄소년

guno 2013. 3. 2. 06:06

 

 

범죄소년 (2012년) ; 강이관 각본·감독, 서영주 이정현 주연

 

몸져누운 할아버지와 단둘이 가난하게 살고있는 지구는 평범한 중학생이다. 껄렁한 친구들과 어울리지만 성격은 조용하고 여자친구에게 다정한 부드러운 남자애다. 친척집이라며 친구녀석이 데려간 집에서 물건을 훔치면서도 괜찮은것 맞냐고 자꾸 물어보고, 나쁜 짓이라는 생각에 움츠러들지만 그래도 잡히지 않았다며 안도하는 모습은 천상 어린애이기도 하다. 훔친 돈으로 여자친구에게 커다란 곰인형을 선물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누운채 변을 본 할아버지를 깨끗이 씻어주는 지구. 늦은 시각 집전화가 울린다. "본 시스템은 보호관찰소에서 시행하는 음성감독 시스템으로서 본인이 아니거나 허위보고시 법적 불이익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음날 학교로 형사들이 찾아온다. 잘 도망쳤다고 생각했는데 집주인에게 들통난 지구에게 붙여진 죄명은 이름도 어마어마한 특수절도. 폭행으로 보호관찰을 받고 있던 지구의 특수절도를 나무라며 소년법정 판사가 묻는다. 지난번 폭행은 어떻게 된거니? 왜 때렸어? 애들이 놀려서요. 합의는 했니? 아니요, 못했어요. 이번에는? 이번에도 못했어요. 하지만 사과는 했어요. 안 만나주셔서 휴대폰으로 죄송하다고 문자메시지 남겼어요. 집에 있으면서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시설에 있는게 좋겠다는 판사에게 지구는 할아버지 땜에 안된다고 한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냐는 판사에게 한번만 용서해달라고 말하는 지구. 하지만 판사는 지구를 소년원으로 보낸다. 

소년원에서 11개월을 보낸 지구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온다. 죽은지 며칠이나 지난 할아버지를 사회복지사가 발견했다고. 혈육이라곤 지구밖에 없는 쓸쓸한 장례식을 함께한 소년원 지도사가 묻는다. 정말 가족이 하나도 없니? 없어요. 다시 소년원으로 돌아온 지구는 갑자기 화를 내거나 주먹을 날리며 자신만의 슬픔을 표현하지만 이 아이의 슬픔을 보듬어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그러던 어느날 지도사가 반갑게 이름을 부른다. 지구야, 엄마 오셨다. 네? 내가 니 엄마를 찾았어. 세 살때 지구를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 너무 젊고 너무 낯선 엄마는 주춤주춤한 모습으로 지구를 만난다. 살아있었으면서 왜 한번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그럴 수 없었어. 17살에 지구를 낳고 너무 무섭고 두려워 도망을 쳤다는 엄마. 자길 버린 엄마를 불쌍하게 바라보는 지구. 지구는 엄마가 밉지 않다.

그날 밤 소년원 아이들이 줄줄이 누워 잠든 방. 한 아이가 재밌는 거라며 얘기를 시작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아빠가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들 생각이 나서 붕어빵을 샀어. 집에 돌아와서 아들에게 붕어빵을 주니까  아들이 와~ 붕어빵이라며 좋아하는 거야. 그때 아빠가 뭐라고 했게? 가시 있으니까 가시는 발라먹어라~" 큭큭큭 이불 덮고 누운 아이들의 웃음이 파도처럼 이어지다가 담담한 지구의 얼굴에서 웃음의 파도가 멈춘다. 

 

소년원에서 나오는 날, 기다리던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는 또 지구를 버린 걸까? 다음날 보호자가 없어 임시보호소로 가게된 지구, 근데 이때 엄마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옷가지가 든 비닐봉지를 대롱대롱 들고 지구가 엄마를 따라나선다. 엄마가 사는 강남 빌라로 들어간 지구. 엄마는 일때문에 다시 나가고 혼자 남겨진 지구는 왠지 잘 갖춰진 집안이 어색하다. 이제 지구도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살게 된 걸까? 미용실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엄마와 엄마 후배가 돌아왔는데 왠지 분위기가 이상하다. 말도 없이 애를 데려오면 어쩌냐고 다그치는 후배와 안절부절 못하는 엄마. 쟤는 도대체 무슨 짓을 해서 소년원에 들어간 거래? 특수절도? 어머! 어린 게 왠일이야?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후배에게 엄마는 말이 험해서 그렇지 여럿이 훔치면 그냥 특수절도라고 해 라며 지구 편을 든다.

사사건건 엄마를 쥐잡듯 하는 후배와 가정부처럼 집안일을 도맡은 엄마의 모습은 왠지 애처롭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는 엄마가 후배의 집에 얹혀살고 있으며 돈이 없어 용돈까지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도 돈을 빌려서라도 지구에게 겨울 잠바를 사입히고 돈도 없으면서 휴대폰을 사주겠노라고 큰소리 탕탕 치는 엄마가 귀엽기도 하다. 지구의 전과기록 때문에 학교에 재입학하기가 어려워지고, 지구와 후배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엄마를 보기가 답답해질 즈음, 지구는 친구에게서 생각지 못했던 말을 듣는다. 너 소년원 있는 동안 니 여자친구가 애기 낳은거 아냐? 걔 집에서도 쫓겨나고 완전 막 나간다던데.

여자친구의 행방을 찾는 와중 지구와 엄마가 후배네 집에서 쫓겨난다. 두 모자가 한겨울의 거리를 정처없이 걷는다. 차가운 김밥 한줄을 나눠 먹으며 바다가 보고싶다고 말하는 지구를 한강변에 데려간 엄마. 다 같은 물이잖아. 멋쩍었던지 엄마는 지구에게 친구들과 산에 놀러갔다가 한번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 지구를 낳게 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임신한걸 알고 받아놓은 연락처로 연락했는데 전화번호도 학교도 이름도 다 가짜더라며. 근데 너 그거 아니? 너 니네 아빠 닮았다. 피식 웃음이 나오는 지구. 두 사람은 찜질방에 짐을 풀고 지구는 잠든척 하지만 엄마가 캐비닛을 몰래 돌며 지갑에서 돈을 훔치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훔친 돈으로 여관에 방도 얻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둘만의 공간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언손을 호호 불어가며 여관 옥상에 빨래를 널고, 매일같이 엄마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풀이죽어 돌아와도 두 사람은 마냥 행복하다. 엄마는 이제 절대 지구를 떠나지 않겠노라고 약속한다.

인터넷으로 여성 쉼터를 뒤져 여자친구를 찾아낸 지구.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내고 얼굴에 표정이 지워진채 살아가는 여자친구는 지구에게서 매몰차게 돌아선다. 하지만 지구는 여자친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책임지고 싶다고 말한다. 이제부터 우리가 같이 열심히 살아서 아기도 데려오면 되잖아. 말도 안돼라며 돌아서지만 끈질지게 찾아오는 지구에게 결국 어이없다는듯 웃음을 보여주는 여자친구. 지구는 결심한듯 엄마에게 말을 꺼낸다. 할 말이 있어. 지구가 자기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려는게 기분좋은 엄마가 바싹 다가앉는다. 무슨 말? 여자친구 얘기를 끝내자 일순 정적이 찾아온다. 창백해진 엄마는 말이 없다가 갑자기 두손으로 지구를 마구 때리며 소리를 지른다. 때리는 건지 통곡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짓을 한거냐며 소리치는 엄마는 처음으로 지구에게 화를 내고 있다. 지구도 화가 나서 여관방을 박차고 나온다. 밤새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다 아침 일찍 여관에 돌아오니 엄마는 짐을 챙겨 다시 사라지고 없다.

주유소에서 먹고 자며 같이 일하게 된 지구와 여자친구. 어느날 여자친구가 말한다. 가끔 아기가 너무 보고 싶을 때가 있어. 근데 너 애기 이름이 뭔줄 알아? 뭔데? 우주. 니가 지구니까 우리 애기는 우주. 두 아이가 마주보며 씩 웃는다. 엄마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계속 무시하느라 화난 얼굴로 일하던 지구 앞에 예전에 친척집이라며 지구를 절도에 끌어들였던 친구가 나타난다. 소년원 갔다오더니 건방져졌다며, 니 여자친구는 애까지 낳고 막나간다며, 넌 참 두루두루 복도 많은 녀석이라니까! 껄떡대는 친구를 무시하고 싶지만 아직 어린 지구는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린다. 다시 경찰서. 합의도 어렵고 보호관찰 위반까지 하게된 지구의 전과기록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만큼 길어져 있다. 정말 보호자가 없냐고 묻는 경찰에게 지구는 자기가 가출해서 연락이 안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근데요. 한번만 용서해주시면 안돼요? 어이없이 쳐다보는 경찰관. 장난해? 결국 지구는 소년교도소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는 주유소에서 쫓겨나 미리 알아두었던 지구 엄마의 연락처로 전화를 한다. 

시간이 흘러 노래방 알바를 하며 노래방 주인언니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엄마가 어느날 부동산 앞을 어슬렁거린다. 싼 방 있어요? 원룸 좋은 거 있는데. 아이가 있어서 원룸은 안돼요. 언제 이사할 건데요? 몇개월 있다가.. 그럼 그때 다시 와요. 돌아선 엄마가 숨을 크게 한번 내쉰 뒤 입을 앙다물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너무너무 평범한 지구는 범죄소년. 자기편이 되어줄 사람 하나 없어서 어린 나이에 무시무시한 전과기록을 갖게 되었지만 그래도 착하고 따뜻한 지구의 이야기가 맘에 들었다. 핏대를 세우며 사회를 고발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의 사정보다는 행위의 결과에만 책임을 지우려는 형사정책을 가해자로 몰아가지도 않으며 그냥 덤덤하게 이렇게 살아지는 인생도 있노라 하고 말하는 감독의 연출도 좋았다. 지구는 바보같은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런 실수는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것이었고, 누군가 책임감 있는 어른이 타이르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면 아마도 지구는 계속 평범한 중학생일 수 있었다. 우리가 호들갑스럽게 소년범이라 부르는 아이들 중에 지구가 있을지 모른다는,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감독의 진심이 느껴졌다. 소년범죄가 성인범죄로 이어지는 이유는 소년범들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고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처벌의 수위가 아니라 그들에 대한 이해인지도 모르겠다. 젊은 엄마로 나오는 이정현을 보고 가수가 왜?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 엔딩을 보며 아, 그녀의 시작은 영화였더랬지 하고 기억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