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친구와 차를 마시며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추리소설만 골라 읽은지 너무 오래 되었다고 하니까 친구가 대뜸 히라노 게이치로가 신작을 낸 걸 아냐고 한다. 그게 누군데? 일식을 쓴 애잖아. 아, 일식. 그게 언제적이야.
1999년 23살의 나이에 <일식>이란 데뷔작으로 12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큰 화제가 됐었다. 명문 교토대학 법학과에 재학중인 학생이, 그것도 이십대 초반의 나이에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건 무라카미 류 이후 23년만의 일이라 대단한 화제가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문학동네에서 재빨리 번역출판되었다.
나 그 책 안 읽었는데. 왜? ..왜라니, 다들 대단하다고 하니까 호기심에 책을 사서 봤는데 재미없어서 덮었어. 2장 정도 읽었나. 그리고 안 읽었지. 말도 안돼. 그게 재미없어? ..너무 오래전이라 가물가물하지만 분명 재미없었어. 그런데 이어지는 친구의 말이 재밌었다. 자기는 그 책을 읽으며 이건 분명 내가 좋아할만한 책이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당연히 히라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머리에 각인이 됐다는 거다. 얘긴 거기서 끝났지만 친구의 말이 마음에 남았다. 내가 좋아할만한 책.. 대체 이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친구는 나를 떠올린 것이다.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거울로 상대방을 비춘다. 아마도 친구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알고 있는 백명의 사람들이 다들 각자의 거울로 나를 비추고 있고, 그 각각의 모습이 모두 조금씩 다를 것이며 어쩌면 전혀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어떤 건 내가 맞고 어떤 건 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비추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니까.
내가 시냇물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누군가는 그것을 듣고 자기 안에서 강물을 만들고 바다를 만든다. 또 어떤 사람은 무슨 소리야 라며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 내가 강물같은 얘기를 했다고, 바다같은 얘기를 했다고, 혹은 무슨 말을 하긴 했었어? 하고 기억한다. 그러니 관계를 맺고 대화를 해도 그것이 내가 생각한대로 온전히 전달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으며, 친구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지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친구의 말은 내 호기심을 묘하게 자극하는 것이어서 나는 당장 집으로 돌아와 책을 찾아봤다. 빨간색 표지였다는 기억이 도움이 됐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친구의 말은 어느정도 맞았다.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내가 이 책을 재미없어했는가 알겠으나 매우 담백하면서도 열정적인 작가가 젊은이다운 상상력으로 무장한채 치열하게 고민한 것이 분명한 생각과 이론들을 폭포수처럼 쏟어내는 책을 읽으며 나는 아주 즐거웠다.
1482년, 파리대학에서 신학수업을 받던 니콜라수사는 졸업과 동시에 피렌체 여행을 계획한다. 토마스주의자였던 그는 성토마스가 당시 이단이라 불렸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신학으로 극복한 것과 같이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매우 위험하기도 한 이교철학들을 신학으로 흡수시키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따라서 이교철학에 관한 이론과 관련서적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피렌체로 떠나려한 것이다. 독을 품은 물이라도 버릴 것이 아니라 질 좋은 포도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그의 투철한 신앙심과 열렬한 학구심에 감복한 주교가 그의 피렌체 여행을 지원하며 가는길 도중에 있는 어느 마을의 연금술사를 만나볼 것을 제안한다. 자연철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이교철학에도 정통한 그를 만나보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소 신자들이 온전한 신앙의 정의가 아니라 설교자 개인의 인품이나 행동에 감복해서 신앙심을 키우는걸 바르지 않을뿐 아니라 위험하다 생각했던 니콜라수사는 그러나 연금술사 피에르 뒤페를 만나는 순간 어느 특별한 인간의 존재야말로 고정된 정신과 사고를 뒤집어엎고 새로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걸 깨닫게 된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도 보는 순간 그에게 매료되어버린 니콜라수사는 그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가기를, 그의 생각과 행동들을 다 듣고 보고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에 빠져든다. 그 또한 자신의 연구에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라 자위하면서.
이단으로 몰이해되는 연금술을 한다는 이유로 마을사람들에게 배척당하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신앙심이 투철한 피에르, 폭넓은 관심과 학문의 깊이를 엿볼수 있는 그의 서재,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인격의 단련인 것처럼 보이는 연금술은 니콜라수사를 더욱 감동시키고, 포교를 하려거나 돈이 되는 연금술을 배워보겠다는 속세의 욕심없이 순수하게 배우고자 하는 니콜라수사에게 피에르 또한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연다. 그러나 피에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니콜라수사는 혼돈에 빠진다.
"나는 말수가 적어졌다. 할수 있는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학문상의 명확하지 않은 점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책속에서 답을 구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와의 토론이 어느순간 끝장날 것이 두려웠다. 그의 설(說)이 이단인가 아닌가를 결정짓는 것이 두려웠다. 그 결정이야말로 곧 그와의 결별이었던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고 망설이고만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피에르를 몰래 뒤따라간 동굴에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안드로규노스(Androgynous, 남자와 여자가 한몸인 양성구유)와 만나는 피에르를 보게 되고, 자신이 본게 과연 무엇인가,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해야 하는지 그가 고민하는 사이 피에르는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에 처할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절체절명의 순간, 피에르 대신 잡혀 화형에 처해지는 안드로규노스. 냉해와 질병의 원인을 마녀 탓으로 돌리려는 마을사람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돌을 맞으며 그가 화형대에 오른다. 그러나 불길이 솟아 시뻘건 불길이 탐욕스런 촉수를 뻗어도 안드로규노스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자신들의 제물이 무참하게 죽길 바라는 사람들이 조금씩 불안을 느낄 즈음, 기적처럼 일식이 일어난다. 태양이 드디어 달과 결합하는 순간, 두려움으로 가득한 어둠속에서 홀로 불길을 견디는 안드로규노스를 보며 니콜라수사는 아득하게 정신을 잃어가며 생각한다.
"나는 분형당하고 있었다. 그 고통에 헐떡거리고 쾌락에 취해 있었다. 나는 수도자이며 이단자였다. 남자이며 여자였다. 나는 안드로규노스이며 안드로규노스는 나였다. 나는 세계를 포옹하고, 세계는 나를 감쌌다. 내계(內界)는 외계(外界)와 같은 육지가 되었다. 같은 바다가 되었다. 세계가 없어지며 내가 있고, 내가 없어지며 세계가 있고, 둘 다를 잃으며 둘 다가 존재했다. 오로지 단 하나로 존재했다."
■ 사유는 돛을 잃은 배처럼, 더듬어 닿을 곳을 찾지 못한채 위태롭게 그 행방이 끊어지려 하였다.
■ 육신을, 이 무거운 고통스러움을.
■ 이런 류의 인종과 접촉하게 될 때, 약간은 오만하다고 할만큼 과묵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나의 별것 아닌 미덕 중의 하나였다.
■ 그것은 너무나도 범용한 혐오감이었다. 사제의 타락한 모습이 너무도 진부하기 짝이 없었던데다 그를 향한 나의 혐오 역시 세상에 흔하게 널린 것과 똑같은 진부한 혐오일 뿐이었다.
■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 상대방과 이야기가 전혀 통하지 않게 되면 나는 새삼스럽게 말이라는 것으로 상대방을 이해시키려 애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머리가 번잡스러워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를 위해 낭비되는 팽대한 말들이 내게는 너무도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견강하고, 외계를 엄하게 거절하며, 항상 내부를 향하는, 한도 끝도 없이 언제까지라도 꽉 차 있는 돌의 침묵.
■ 말(言語)이라는 것이 이성의 채찍질에 의해 단련된 근육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면, 그 남자의 말은 감정에 의해 어떤 한 부분에만 쓸모없이 지방분이 덕지덕지 붙어버린듯한, 심히 균형을 잃은 것이었다.
■ 한참 지난 후에야 나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나의 너무나 긴 침묵이 내 손을 떠나 아무렇게나 해석되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 그의 감정은 깊은 안쪽에 있었다. 견고하게 닫혀진, 그 준엄한 얼굴의 깊은 속에 있었다. 감정이라는 것이 육체의 안쪽에 감춰져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
이 책은 대화가 거의 없다.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다. 니콜라수사는 피에르에게조차 질문을 던지지 않고 대부분 관찰을 한다. 세상을 보고 듣고 그것을 마음으로 가져와 곰곰히 생각하고 그제서야 판단한다. 마치 보는족족 도토리를 집으로 가져가놓곤 그제서야 쓸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내는 다람쥐처럼 주인공은 질문하지 않고 대답하지 않고 다 끌어안은채 저혼자 사고한다. 엄청난 관찰력과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은 그래서 작가의 혈기왕성한 젊음과 고독과 차고 넘치는 정신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작가도 자신의 불통성을 알기에 책의 첫장에 이것은 수기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여하튼 나는 화형식에서 끝날줄 알았던 이 책이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걸 보고 무척 놀랐다. 이제막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라면 이야기를 끝내는데 서툰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는 아니었다. 뜨겁게 타오르는 시뻘건 폭죽을 하늘로 쏘아올렸다, 에서 끝내지않고 그것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른 뒤 빛이 가루가 되고 다시 어둠이 되는 순간 또 하나의 폭죽이 어딘가에서 하늘로 쏘아졌다, 라며 제대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읽는 것이 매우 즐거웠지만 <일식>이란 책보다는, 거대한 폭포수처럼 넘쳐나는 자신의 생각들을,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들이 숨막혀 죽을지 모른다고 걱정한걸까. 정교한 언어의 그물로 생각의 물줄기를 조절한 히라노 게이치로, 이 생각많은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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