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곡성을 보고 왔다. 피비린내 진동하는 영화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섬뜩할 정도였다. 이 감독이 얼마나 피를 좋아하는지. 추격자와 황해를 보며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곡성은 정말 피를 제대로 잘 활용한 올바른 예라 할 수 있어서, 피칠갑 좋아하는 나는 관람중에도 몇번이나 감동했다. 화면에서 피비린내가 느껴질 정도였다. 생리중이죠? 냄새가 비릿한게.. 추격자에서 하정우의 대사가 기억났다. 감독이 의도했구나. 비린내가 진동할 정도로 피에 젖은 축축한 영화를 만들었네 하고 웃었다.
추격자가 새로운 악의 등장을 알리는 영화였다면 황해는 개병처럼 번지고 있는 악과 싸우는 힘없는 인간을 그리더니 곡성은 악에 맞서다 어느새 악이 되어버리는 슬픈 인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보기엔 나홍진표 악의 3부작, 완결판 같다.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외지인도, 황정민이 연기한 일광 또한 악을 물리친다며 쫓아가지만 어느새 경계는 허물어져버리고 그들 자신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니체가 그랬던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게 하라고. 그대가 오랫동안 악의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악의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 볼지니.. 그래서 미끼를 물었다, 하는 대사가 나온건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아님 돌멩이를 던지며 장난치는 아기동자인가? 장승같은 존재를 젊은 여자로 설정한 것도 꽤 볼만 했고, 그녀가 마지막 곽도원이 연기한 종구의 팔을 잡으며 가지 말라고 말한 것도 결국 그 곳에서 그가 볼 것은 악의 심연이고 그가 더이상 악에 의해 끌려가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잡힌 팔을 뿌리치듯이 인간은 결국 경계를 넘는다. 그게 인간이니까.
예수의 재림처럼 믿어지지 않는 악의 존재가 형태를 가지고 우리 곁에 살아있다. 우리는 현실에 의지해 살지만 급박한 상황에서는 결국 미신이라 치부했던 것들에 고개를 돌린다. 그만큼 경계는 얇고 가볍다. 경험하면 알게 된다. 그러니 평범한 당신, 그대도 악이 던진 미끼를 물지 않도록 주의하라. 한순간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 뭐 그런. 그래서 종교를 시그니쳐로 사용하는 건가. 추격자에서도 교회와 십자가가, 황해에서도 뜬금없이 아주 섬뜩하게도 악의 화신같은 남자가 예배하는 장면이 나오고, 곡성에서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국 신부를 찾아가는 종구가 나온다. 그리고 신부는 말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두려움을 잊어라. 웃기지 않은가. 기적의 토대에서 자랐으면서 기적은 없다고 말하는 현실 종교가. 여튼 추격자와 황해 그리고 곡성, 점점 갈수록 더 비대중적인 영화가 되어간다 생각하는데 관람객이 이토록 많은 것에 놀라며 늦은 밤 만석이 된 영화관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오랜만에 재밌게 영화를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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