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 노트

해무

guno 2015. 5. 3. 21:26

 

 

바닷가에 살아도 옆에 바다가 있다는걸 종종 잊고 산다. 하지만 비가 내리면 자욱한 해무가 온 동네를 뒤덮는다. 창문을 열었다가 짙은 안개에 깜짝 놀라고 그제서야 아, 바닷가니까.. 하고 그렇지 한다. 서울에서 살 때는 몰랐던 엄청난 안개의 바다. 새벽부터 내린 비에 전방 20m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세상을 덮쳤다. 누군가 대형 분무기를 뿌리는 것처럼 안개는 가실줄 모르고 비는 부슬부슬 하루종일 내렸다. 뿌연 가로등 불빛.. 빗속을 걷는게 아니라 연극무대에 선 기분이다. 아니 연극무대라기보다는 영화 '극락도 살인사건'의 한 장면에 더 가깝다. 안개에 가려진 어둔 골목에서 누군가 불쑥 튀어나올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가 공포심을 자아낸다. 소심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치킨 배달 아저씨가 달달달 소리를 내며 서행하다 답답했던지 허공에 욕지거리를 날린다. 슈퍼마켓 간판을 어림짐작으로 찾아가며 안개가 짙어 숨쉬기도 힘들구나. 뻐끔뻐끔 하다보니 물고기가 된 기분. 육지를 점령한 바다, 짙은 해무 속에서 헤험치는 물고기가 되었다.    

 

 

by Klimt 'Fish Blood'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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