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서

이사카 코타로, 마왕

guno 2010. 2. 12. 00:56

 

; 사람은 원래 살인에는 저항감을 갖는다. 인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이 동족을 죽이는 데는 망설인다. 따라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인이 필요하다. 가장 큰 요인은 뭘까.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에게 '왜 사람을 쏘았나'라고 질문했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답은 '명령을 받았으니까'였다고 한다. 사람은 명령을 받으면 그것이 제아무리 괴로운 일이더라도 결국은 실행한다. 또 하나, 집단일 때. 집단은 죄의식을 가볍게 만들어주는데다 서로가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명령이 실행되도록 지원한다. 이런 요인이 충족될 때 사람은 스스럼 없이 동족을 죽인다.

 

;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대. 군중이 그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그런데 그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대단하지.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히가시노 게이고로 시작된 일본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은 미야베 미유키로, 다시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재발견으로, 에도가와 란포와의 만남을 통해 기대치는 더욱 더 높아져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여한 다카노 가즈아키가 궁금해졌고, 마침내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를 검색하다 드디어 시마타 소지와 강렬한 만남을 갖고, 시마타 소지에 대한 관심은 확장되어 그가 어딘가에서 추천한 이사카 코타로를 알게 됐는데, 내가 그의 책을 2권이나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읽기 시작했다. <사신치바>도 나름 재밌었는데.. 그가 그였군. 웅진에 있을 때 다른 팀에서 나온 책을 몇권 받아뒀는데, 그속에 있었다. 민주주의가 발견한 20세기 최고의 가치, 개인주의에 대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려할 때 '반발'이라는 이름으로 파시즘을 경계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나름 설득력 있다. 특히 그가 일본인이라서 더욱 더. 그의 말처럼 일본 국민은 규율을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지나치게 받은 덕분에 역사적으로 대규모 폭동을 일으키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설득력있게 만들어준다.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시대정신에 대해서, 역사의식에 대해서 일본 젊은 세대의 리얼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술자리에서 편안하게 나누는 대화를 통해 근현대사에 대한 입장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아, 이런 생각들을 하는 구나'하고 읽는 내내 매우 신선했다. <마왕>이란 이름은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에서 따왔다.

 

어두운 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말을 몰고 있다. 

"아들아, 왜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관을 쓴 마왕이 있어요."

"그건 안개란다."

"아버지, 들리지 않아요? 마왕이 무언가 속삭여요."

"그건 마른 잎의 소리란다. 진정하렴."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마왕의 딸이 있어요."

"보이지만 저건 버드나무란다."

"아버지, 이제 마왕이 나를 붙잡고 있어요."

마침내 아버지도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전속력을 다해 말을 몬다.

그리고 겨우 집에 당도해보니, 그 사이 아들은 죽어 차갑게 식어있더라는.